쌀 브랜드의 맏형, 이천쌀

2006. 9. 5.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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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조선 성종 때 지은 <동국여지승람>에 경기 이천은 '땅이 넓고 기름진 곳으로 백성들이 부유하고 밥맛 좋은 쌀을 생산해 임금님께 진상하는 쌀의 명산지'로 기록돼 있다. 옛 기록의 맥을 이어 이천시 농산물 대표 브랜드인 '임금님표 이천쌀'은 전국 2천여 브랜드 쌀 중에서 최상위권으로 꼽힌다. 이천쌀은 농림부에서 주최한 '2005년 농산물 파워브랜드' 대전에서 전국 각 도·시·군에서 출품한 각종 브랜드를 제치고 최고상인 대상을 받았다. 3회 연속 대상의 진기록이었다. 이천시 농림과의 최용환 과장은 "이천쌀은 칼로리가 낮고 밥맛을 떨어뜨리는 단백질 함량은 다른 지역 쌀보다 적은 반면, 비타민과 철분이 풍부해 밥맛이 좋다"고 말했다.

임금님께 진상하던 이천쌀의 이미지를 최대한 부각시킨 '임금님표 이천쌀' 브랜드가 탄생(상표등록)한 것은 1995년 6월이었다. 이천시와 관내 10개 농협이 공동 사용권을 갖는 방식으로, 쌀 브랜드의 상표등록은 국내 첫 사례였다.

'…이천쌀'은 2천여 쌀 브랜드의 맏형인 셈이다.

이천쌀이 브랜드화하기까지는 적지 않는 곡절을 겪었다. 1993년 의장등록을 포함한 이천쌀 상표 등록안을 마련, 이듬해 특허청에 상표등록 출원서를 제출했지만 거절당했다. 이미 등록된 '왕·wang'과 'king·킹'과 유사하다는 이유였다. 또 '이천에서 재배된 쌀'과 관련 없는 상품에 사용할 경우 일반 소비자들이 오인할 우려가 있다는 점도 거절 사유였다. 이에 이천시는 △1995년부터 국내 농산물의 원산지 표시제가 의무화된다는 점 △쌀 수입 개방으로 외국의 상표(미국 로스앤젤레스의 '이천쌀' 등)가 침투할 수 있다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이와 함께 이천쌀 상표의 지정쌀을 '이천에서 재배된 쌀'로 인정한다는 보완 조처를 약속함으로써 상표등록증을 받기에 이르렀다.

이천쌀의 마케팅 전략은 3개 기관의 공동 협업 체제로 펼쳐지고 있다. 이천시는 예산 등 행정지원을, 농협은 고품질 생산을 위한 생산지도와 품질관리 등 유통과 판매를, 이천쌀사랑협의회는 홍보와 판매를 전담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이천시장이 보증하는 품질인증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농산물 부문에선 전국 처음으로 '리콜제'를 도입했다. TV와 지하철 등 다중 이용 시설에서 이천쌀 광고를 자주 볼 수 있을 정도로 홍보에도 적극적이다.

이같은 마케팅과 홍보전략에 힘입어 이천쌀의 생산량은 1997년 5만3165t에서 2004년 4만9722t으로 줄었지만, 같은 기간 매출액은 1192억원에서 1292억원으로 늘었다. 쌀값 하락세 속에서 거둔 실적임을 감안하면 고급화가 이뤄졌음을 보여준다. 이천쌀의 가격은 20kg들이 기준으로 5만원대에 이른다. 보통쌀(저가미) 가격이 3만원대인 데 견줘 60∼70%가량 비싼 셈이다. 이천시는 "이천쌀 브랜드의 자리를 굳히기 위해 농약 사용 축소, 가공저장 시설 현대화, 포장 개량, 리콜제 확대, 출하조정제 등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힌다. 이천쌀은 지금까지 작지 않은 성과를 올렸지만, 앞날이 마냥 밝은 것만은 아니다. 쌀시장 개방,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등 농촌·농업을 옥죄는 굴레에서 이천쌀 또한 자유롭지 못하다. 한 해 생산되는 5만t 중 자가 소비를 뺀 실제 판매분은 3만5천t밖에 안 된다. 그나마도 해를 거듭할수록 줄고 있다. 1위 브랜드마저 위태로운 입지는 한국 농업의 생생한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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