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 의병장 허위선생 손자2명 60여년만에 모국품에

2006. 7. 19.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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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일제의 핍박에 쫓겨 조국을 떠나야 했던 의병장의 손자들이 60년 만에 고국 품에 안겼다. 주인공은 구한말 의병대장으로 활약했던 왕산(旺山) 허위(許蔿) 선생(1854∼1908)의 손자인 허 게오르기(62)ㆍ블라디슬라프(55) 형제.

이제는 백발이 된 키르기스스탄의 두 '고려인'들은 18일 독립유공자 후손으로서 특별귀화증을 받고 '대한국민'이 됐다. 이들은 "소수민족이라고 차별받을 때 마음속에 고이 품고 있던 고국이 60여년 만에 저희를 안아줬다."며 감회를 밝혔다. 허 선생은 성균관에서 박사를 제수받은 뒤 중추원 의관, 정삼품 통정대부 등 관직을 거쳤다. 그는 일제에 의해 한국 군대가 해산됐던 1907년 의병대를 조직, 경기도와 황해도 일대에서 항쟁을 이끌었다. 특히 1908년 4월 정미의병 당시 '서울진공작전'을 주도했다. 그가 이끄는 의병은 1908년 2월 서울 동대문 밖 30리까지 진격했으나 일본군의 화력에 밀려 퇴각했다. 현재 동대문에서 청량리에 이르는 '왕산로'가 그를 기념하는 곳이다. 그는 같은 해 5월 2차 서울 탈환작전을 준비하다 일제 헌병의 습격을 받고 체포돼 9월 서대문형무소 '1호 사형수'로 옥사했다.

허 선생이 옥사하자 가족들의 고난이 시작됐다. 그의 가족들은 1915년 일제의 핍박에 못 이겨 만주로 떠났고 이들 중 4남인 허국 선생은(1971년 사망) 구 소련의 고려인 강제이주 정책 때문에 중앙아시아로 거처를 옮기던 중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에서 게오르기씨와 블라디슬라프씨를 낳았다.

허 선생의 공훈은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에 추서될 정도로 인정받았지만 그의 가족들은 오랫동안 '떠돌이'였다.1991년 키르기스스탄이 분리·독립하면서 키르기스인이나 러시아인도 아닌 '고려인'이었던 두 형제는 소수민족으로서 차별받았다. 이때부터 두 형제는 화물차 운전과 소작 농사 등 가리지 않고 일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갔다. 두 형제는 2003년 중앙아시아의 고려인들을 영상으로 담아 온 국내 모 다큐멘터리 업체 관계자와 만나면서 고국에 돌아올 길을 찾게 됐다. 이듬해 이 업체를 통해 관련 사실이 국가보훈처에 통보됐고 지난해 법무부가 취업비자를 발급해 주면서 두 형제는 한국 땅을 밟았다. 국내 모 의료기기 제조업체에 취직한 두 형제는 1년여 뒤 국가유공자 후손에게 자격이 주어지는 '특별귀화'를 통해 대한민국 국민 자격을 얻게 됐다.

두 형제는 "타국에서 서러운 시절을 겪었지만 한국은 언제나 자랑스러운 나라였다."면서 "함께 온 자녀가 한국 문화를 배우며 커갈 수 있게 돼 참 만족스럽다."고 기뻐했다.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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