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고수 찾아 십년 문필봉 '고수' 되었네

2006. 6. 30. 17:0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한겨레] 한국의 글쟁이들/③ 강호동양학 문필가 조용헌씨

"문필가를 알려면 그 서재를 봐야지요."

하지만 문외한인 기자에게 그 차이가 쉽게 보일리야. 그저 '정신'과 '역사'에 관한 책들이 많다는 것만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보다는 집안 곳곳 가구 대신 책장이 놓여있는 게 여늬 집들과 가장 달라보였다. 글쟁이 조용헌씨가 사는 전북 익산시 어양동의 복층식 아파트는 집안 곳곳이 서재였다. '진짜 서재'는 아랫층인 지하층 전체였는데, 마루 벽 전체가 책꽂이였다. 맞은 편에 놓인 커다란 화이트보드에는 유명 학자며 책이름 같은 명사들이 빽빽하게 적혀 있었다. 특히나 눈에 띄는 것은 마루 바닥 가운데 있는 둥그런 나무틀. "글쓰다가 이렇게 누워서 몸을 펴는 겁니다." 인도의 요가 수행자들이 쓰는 것을 본떠 판다는 '기지개용 도구'였다. 그러고 보니 컴퓨터를 놓은 책상이며 가구들이 앉은뱅이다. 동양학 전문 저술가니 좌식생활을 하는 게 어찌보면 당연할텐데도 무척이나 새로워 보였다.

"난 저술가라고 안하고 문필가라고 해요. 풍수에 문필봉이란 게 있는데, 집터 앞에 삼각형으로 솟은 문필봉이 있는 걸 최고로 쳐요. 조지훈 종택이나 영랑 생가에 가보면 문필봉이 앞에 있지요. 옛말에 문필봉은 있어도 저술봉은 없으니 문필가라 하는게 맞지요."(막상 조씨의 아파트 앞에는 문필봉이 없었다. 대신 양쪽에 어양중과 영등중 두 중학교를 거느리고 있어 어느 정도 문기(文氣)를 전해받는 듯했다.)

조씨는 문필가의 본질을 논어에 나오는 '학야녹재기중'(學也祿在其中), 곧 '공부를 하면 녹이 그 안에 있다'는 말을 약간 바꿔 '필야녹재기중'(筆也祿在其中)이라고 설명한다. 글 써서 먹고 산다는 이야기다. 이 문필가란 요즘 말로 '1인기업가'이며, '시대의 스토리텔러'란 게 그의 지론이다. 펜 하나 달랑 들고 홀로 이야기꾼으로 살아가는 것. 그런데 정작 그가 문필가로 살기로 결심한 것은 3년 전이었다고 한다. 1999년 첫 책을 낸 뒤로 한 참 지나서였다. "그 때는 직장에서 월급받았으니까. 책은 뭐 그냥 낸거지. (인생의) 승부는 안걸어요. 재미로 하는 거지." 말투는 의뭉한듯 한데 거침이 없다. 출판가에는 조씨가 출판사 사장과 담당 편집자의 관상이며, 출판사 건물의 풍수를 보고 계약을 한다는 소문이 있어 물었는데 그건 아니란다. "서로의 아이덴티티를 따져요. '전통 플러스 동양적 팬터지' 이게 내 아이덴티티인데 이게 출판사의 출판방향과 맞는지 보는 거죠."

글감에 '전통+동양적 판타지' 가미

조씨가 첫 책을 낸 지 이제 7년, 쓴 책은 아직 10권에 못미친다. 그런데도 조용헌씨의 책 제목에는 '조용헌의~'라는 브랜드가 붙는다. 짧은 기간이지만 그가 저술가로서 또렷하게 자기 존재를 각인시킨 덕분이다. 조씨는 자기가 글쓰는 장르를 직접 만들어냈다. 이름하야 '강호동양학'. 누구나 관심을 가지는 주제이면서도 정식 학문이나 제도권 지식으로는 여겨지지 않는 '동양학'을 들고 나온 것이다. 사주명리학이며 풍수, 그리고 도사들의 이야기 등 우리 생활속에서는 하나의 문화와 전통으로 살아 있지만 정색을 하고 책으로 다루지는 않았던 것들을 책으로 펴냈다. 그가 말하는 강호동양학은 동양문화의 열쇳말들인 문·사·철과 유·불·선, 그리고 천문·지리·인사라는 아홉가지를 구궁(九宮)으로 한다. 이 아홉가지 열쇠로 풀어내는 동양학, 정통 제도권 동양학을 둘러싼 더 넓은 의미의 동양학, 그게 강호동양학이다. 이 강호동양학이 저술가로써 조씨의 강점이자 차별화 요소요, 매력이다.

조씨는 불교민속학으로 박사학위를 딴 뒤 잠깐 직장생활도 했지만 샐러리맨 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혼자 전국을 누볐다고 한다. 10년 이상 전국 이름난 절집이며 명문가, 산속에 사는 아웃사이더들들 찾아다니며 보고 들은 것들이 그만의 컨텐츠다. 조씨는 이 글감들을 동양학 지식에 버무려 '전통'과 '동양적 팬터지'란 두가지를 들려주는 책을 쓰는 데 주력한다.

조씨는 2000년 <500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푸른역사)란 책으로 그 이름을 알린다. 전국 명문가들의 가훈과 교육철학, 그리고 한국적 '노블리스 오블리주'(높은 사회적 지위에 걸맞는 도덕적 책무)의 전통을 들여다본 책이었는데, 많은 주목을 받으면서 5만부 이상 팔려나갔다. 이후 <조용헌의 사주명리학>(2002·생각의나무), <방외지사>와 <고수기행> 등의 책을 해마다 펴내면서 저술가로 자리를 굳혔고, 종합일간지와 시사잡지 칼럼니스트로도 활발하게 글을 쓰고 있다. 연수입은 1억원 이상인데, 원고료:인세:강연료의 비율이 각각 4:2:4다.

저술가로서 조씨 최대의 무기는 역시 차별화한 '동양학'이란 소재다. 그가 주로 취재하는 대상은 "컨텐츠를 지닌 사람들"이다. 찾기도 힘들고 말 트기도 힘들지만 오래하니 요령이 생겼다고 한다. "이런 양반들이 꼭 점조직 같아서 오대산 사람을 만나면 지리산 사람을 소개해주고 지리산에 가면 계룡산 사람을 알려줘요. 어려운 것은 명문가 후손들처럼 자존심 센 분들 인터뷰하는 거지요. 처음 만나면 쉽게 말씀을 안해요. 그럴 때는 풍수나 보학, 한시 같은 것들로 이야기 한 자락 슬쩍 운을 떼 관심을 끌어서 말문을 틔워야 해요."

조씨는 "책을 펴내면서 우리나라 사람들, 특히 중장년층이나 샐러리맨들이 느끼게 되는 공허함을 달래주는 글을 썼을 때 독자들이 남다른 반응을 보인다는 점을 알게 됐다"고 한다. 그래서 펴낸 책들이 평범한 삶의 규칙을 벗어나 독특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방외지사>나 독특한 자기 분야를 일군 사람들을 소개하는 <고수기행>이다. 무엇보다도 이야기꾼인 자신 역시 이런 사람들과 통하는 탓도 크다. "이야기꾼은 삐딱해야해. 평범한 사람들 만나면 상상력이 줄어요. 문필업은 반항적 기질이 있어야 해요."

이야기꾼으로서의 '글발'도 조씨의 강점으로 꼽힌다. 조씨의 글은 단문이 특징이다. '한 문장에 하나의 생각'(one idea one sentence), '문어와 구어의 일치'가 그의 글쓰기 철학이다. 좋아하는 글쟁이는 언론인 박권상, 그리고 외국작가 오스카 와일드다. 오스카 와일드는 문장이 짧고 관계대명사가 없어 읽으면서 헷갈리지 않기 때문에 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쓸것 많은데 몸 안 좋아 '운기조식'

조씨의 책에 대한 독자들의 평가는 비교적 크게 엇갈리는 편이다. 무엇보다도 '재미'가 있으며, 막연하게만 알던 동양학에 대해 명쾌하게 정리해준다는 것이 긍정적 평가의 축을 이룬다. 반면 지나치게 주관적이어서 어디까지가 객관이고 어디까지가 주관인지 모르겠다는 비판도 있다. 조씨 자신은 자신이 학자라기보다는 '이야기꾼'이란 점을 강조한다. 학문적으로는 공인받지 못했어도 구전된 부분 등을 다루는 것은 작가적 허용 범위 안에 있다는 것이다. '그 시대의 이야기'로 보아달란 주문이다.

조씨는 앞으로 불교의 명찰들에 대한 이야기를 책으로 쓸 계획이다. 명문가 이야기의 후속편도 준비중이다. 쓸 것은 많은 데 몸이 다소 안좋아 현재는 운기조식 중이라고 한다. "주화입마가 풀리면 글쓰는 속도가 되살아날 것"이라고 조씨는 웃었다.

익산/글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사진 임종진 기자 stepano@hani.co.kr

조용헌이 말하는 내 책은…

500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

푸른역사 펴냄

'유교+풍수'. 노블리스 오블리주란 화두를 던진 것이 그렇게 큰 관심을 모을 줄 몰랐다. 나온 지 4년이 지나가는데도 아직도 이 책과 관련해 문의와 강의 요청이 가장 많다.

조용헌의 사주명리학 이야기

생각의나무 펴냄

'도교+사주'. 내가 도사를 만난 보고서다. 우리 신화와 역사, 예언 같은 것들을 녹여넣었다. 내 책 가운데 가장 재미있다는 평을 들었다. 도사들의 세계, 그리고 사주명리학이란 분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가르쳐주는 책.

조용헌의 사찰기행

'불교+무속'. 우리 사찰의 영험담과 역사, 사찰 풍수와 고승들의 이야기다. 데뷔 초기작인데 내가 생각하는 강호동양학의 구궁들이 모두 조금씩 들어있어 앞으로 내 저술방향의 단초들을 보여준다.

방외지사

정신세계원 펴냄

'행복한 아웃사이더 열전'. 명문대를 나오고, 직장 들어가고, 승진하고, 그리고 차 한대 사고 아파트 사는 규격화한 삶을 좇는데, 이렇게 살지 않아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자기가 가면 길이지 꼭 한쪽으로만 가야 하나?

고수기행

랜덤하우스중앙 펴냄

어떻게 살아야 삶의 고수가 되느냐늘 말하고자 했다. 난 성공이란 게 고수가 되는 거라고 본다. 자기 분야에서 고수가 되는 것. 이들을 삶의 모델로 삼긴 힘들겠지만 대리만족할만한 참고자료로 보여주고 싶었다.

<< 온라인미디어의 새로운 시작. 인터넷한겨레가 바꿔갑니다. >>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Copyright © 한겨레신문사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