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약진운동' 이산자들의 가족찾기

2006. 5. 3.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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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전 버려진 아이들 "내 부모는 어디에"

(베이징=연합뉴스) 이돈관 특파원 = 국제 노동절인 지난 1일 중국 동부 장쑤(江蘇)성 이싱(宜興)시에서는 최고지도자의 잘못된 판단 때문에 발생한 국내 정치건의 영향으로 이산가족이 된 사람들을 위한 중국판 이산가족찾기 행사가 열렸다.

이싱시 관린(官林)진 중심소학교 운동장에서 이날 아침 7시부터 시작된 이 '친족찾기모임(尋親會)'에는 전국 10여개 성.시에 사는 당.정기관 간부, 대학교수, 퇴직 노동자, 농민 등 다양한 성분의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들은 32도의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본인이나 찾는 사람의 인적사항, 신체적 특징, 어렸을 때 찍은 빛 바랜 흑백사진 등을 가슴에 걸거나 두 손으로 치켜들고 소리 높여 '아버지' '어머니'를 부르며 가족을 찾았다.

한 민간단체가 주선해 올해로 다섯번째 열린 이날 '친족찾기모임'에서 극적으로 상봉에 성공한 사람들은 모두 다섯 가족. 그 가운데는 한살 때 가족과 헤어졌다가 50년만에 85세의 노모를 만난 50대 여성도 있었다.

중국 언론은 이날 가족찾기에 나선 1천여명의 대부분이 지난 1950년대 중반에서 1960년대 초반에 태어났으나 부양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어렸을 때 '버려진' 장쑤, 저장(浙江), 상하이(上海) 등지 출생자들과 그 가족들이라고 보도했다.

이들은 '유기(遺棄)된' 후 고아원 등에 수용되거나 산둥(山東)성, 허난(河南)성, 허베이(河北)성, 랴오닝(遼寧)성 등지의 가정에 입양돼 성장한 사람들이라고 중국 언론은 덧붙였다.

1950년대 중반에서 1960년대 초반이라면 중국의 최고지도자 마오쩌둥(毛澤東)의 주도 하에 강력하게 진행됐으나 결국은 "국가와 인민에 커다란 손실만 안겨준 채" 실패로 끝난 '대약진(大躍進)운동' 시기다.

이날 수십년간 헤어져 서로 어디에 사는지조차 모른채 가족을 찾으러 나온 사람들은 전쟁으로 인해 생긴 한국의 '남.북이산가족'과는 다른 '대약진운동 이산가족'인 셈이었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대륙의 딸' 저자 장룽(張戎)과, 그녀의 남편인 영국 역사학자 존 핼리데이가 쓴 '마오: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이라는 책에는 마오쩌둥이 1958년 대약진운동을 시작했으나 1961년까지 4년 사이 3천800만명 가까운 중국인이 기근으로 죽었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이것이 "20세기 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상 최악의 참사였다"면서 마오쩌둥은 1958-1959년에 닥친 최악의 기근에도 불구하고 인민들에게 배급하면 한 명도 굶어죽지 않을 양인 700만t의 곡물을 수출하는가 하면 원자폭탄 제조비용으로 41억달러를 지출했다고 썼다.

프랑스의 역사학자 스테파네 크루투아, 장-루이 마르골랭 등이 공동집필한 '공산주의 흑서'라는 책은 "대약진운동 시기에 사망한 어린이들의 시신이 삶긴 후 비료로 사용됐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중국은 이를 사실무근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d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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