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명 "국회귀신 화났다"
▣ 이기명 국민참여연대 상임고문이 지인들에게 보낸 서신
"신뢰회복의 굿판을 벌이자"
1966년 9월 22일, 박 정희 독재시절 국회 본 회의장. 김 두한 의원이 대 정부 질문을 하기 위해 단상에 섰다. 단상 아래 국무위원 석에는 정 일권 국무총리와 장기영 부총리 등이 앉아 있었고 김 의원은 삼성의 사카린 밀수를 강도 높게 비난했다.
그는 삼성사카린 밀수를 얼버무리고 있는 정부각료는 나의 피고라고 하면서 준비했던 오물을 뿌렸다. 오물은 김 의원이 파고다 공원 화장실에서 직접 퍼 온 것이다. 그는 선열의 얼이 배어 있는 것이라고 일갈하며 국무위원들에게 뿌렸고 국무위원들은 그야말로 오물(糞)바가지를 쓴 것이다.
국회의 권위가 땅바닥으로 굴러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국민의 성스러운 투표로 뽑힌 국회의원들이 노심초사 국정을 걱정하고 논의한다는 의사당이지만 그날은 인분냄새로 가득 찼다.
의사당의 수난사 역시 파란만장이다. 부산 발췌개헌에서 사사오입 개헌안 통과, 국가보안법을 비롯한 온갖 악법들의 날치기 통과, 심지어 방청석에서 손바닥이 의사봉을 대신하는 코미디가 연출되는 의사당은 한국 정치의 희극과 비극이 교차되는 현장이기도 했다.
자유당 독재정권시절 거수기라는 불명예를 감수했고 유신이 선포되어도 속수무책이던 국회는 이제 벗 꽃이 만개한 여의도에서 '사꾸라' 향을 맡으며 장엄하게 서 있다. 유신 독재시절이나 전 두환 군사정권 시절 독재에 대해 입 한번 뻥끗하지 못하던 의원들은 이제 한 점 두려움 없이 민주주의를 만끽하고 있는 것이다.
말이야 되던 말든 욕이야 먹던 말든 열린 입으로 마음대로 토해내는 소리를 들으며 자기를 뽑아 준 유권자들은 얼마나 참담해 하는지 알기는 아는지 측은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술주정으로 역사의 이름이 기록될 고명한 한나라 당의 어느 의원이 한 점 부끄러움 없이 한 발언 가운데 입에 담기도 부끄럽지만 절대로 다른 정치인들은 배우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로 공개한다.
그는 '이 해찬 정 동영 두 사람은 오렌지 좌파, 강 금실 서울시장 예비후보는 아리랑 진보, 오마이뉴스는 김 대업뉴스, 참여연대와 전교조는 '건달 진보와 하이에나 좌파'라고 했다.
말 만드는 조어능력을 칭찬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되지도 않는 말 만드는 재주만은 비상하고 그럴 시간 있으면 정치 좀 잘하고 술 끊은 방법도 연구했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의도에는 요즘 이런 우스개 소리가 돈다. 귀신들이 화가 몹시 났다는 것이다.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여의도 국회의사당의 귀신들이 화가 단단히 났다는 것이다. 귀신들의 주장에 의하면 엄청나게 명예가 훼손됐다는 것인데 사건의 진상을 알아보면 이해할 만도 하다.
동아일보 여기자 성 추행 사건으로 인한 최 연희 의원 사퇴결의안이 국회에서 표결됐는데 예상을 깨고 83표의 반대표가 나왔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서 발생했다. 한나라 당의 이 계진이란 의원은 자신이 기권을 했다는 양심선언으로 입장을 분명히 했는데 나머지 의원들은 누구를 붙들고 물어봐도 반대표를 던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결론은 난 것이다. 반대표는 의사당 귀신이 던졌다는 것이다.
귀신들이 더욱 화를 내는 이유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분별은 인간보다 훨씬 나은데 어찌 반대표를 던지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니 자존심은 있는대로 상하고 이건 분명히 귀신의 명예를 훼손한 중대 사안이라는 주장이다. 이거 그냥 웃을 얘기가 아니다.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우는 입법 활동의 본거지 국회가 조용하다면 오히려 이상하다고 할지 모르나 시끄러워도 국민들이 무릎을 치며 정말 잘 한다고 칭찬을 하고 야간국회 때는 김밥이라고 싸 들고 찾아 와 격려하는 그런 국회라면 시끄러운들 무슨 상관이 있으랴. 문제는 국민들의 속이 뒤집히고 욕이 목구멍 까지 기어 올라오는 일들이 국회에서 하루가 멀게 터져 나오기 때문이다.
차라리 귀를 막고 싶은 전 여옥 의원의 독설은 요즘 대변인을 그만 둔 후 안 들어서 더 없이 다행이지만 그 대신 국회에서 들려오는 한심한 추문은 귀와 함께 눈도 감아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한나라 당 최 연희 의원의 여기자 성 추행 사건은 이제 법의 심판이 남았지만 국회가 욕을 안 먹으면 무슨 큰일이라도 나는지 이번에는 5.31선거와 관련된 한나라 당 의원들의 공천관련 추문이다.
한나라 당의 5선의원이며 당 대표를 지낸 김 덕룡 의원과 서울시당위원장인 박 성범 의원이 구청장 공천과 관련해서 부인을 통해 거액을 챙기고 그게 들통이 나는 바람에 자신은 물론이고 한나라 당도 똥친 막대 신세가 된 것이다.
박 근혜 대표가 최 연희 의원 성추행 사건에서 좀 벗어나려는가 싶더니 여우가 지나가니까 늑대가 버티고 있다고 이번에는 한나라 당을 뿌리 채 흔든 공천비리 사건인 것이다. 더구나 이것으로 끝이 난 것이 아니라 대여섯 건이나 줄을 이어 대기를 하고 있다니 언제 곡성이 또 터져 나올지 그야말로 귀신도 모를 일이다.
이게 무슨 팔자냐는 듯 참담한 얼굴의 박 근혜 당 대표와 이재오 원내 대표를 보면서 당의 지도자 노릇 하기 참 힘들구나 하는 불쌍한 생각이 든다. 그러나 어차피 겪어야 할 일이라면 빨리 터지는 게 낫다. 가장 걸리는 게 5.31 선거를 망치는 것이지만 사람 같지도 않은 인간들이 당선이 되어 지방자치를 완전무결하게 망친다면 한나라 당의 집권은 영원히 안녕이다. 이번 기회에 썩은 부위는 완전히 도려내야 할 것이다.
국민들에게 혐오식품처럼 느껴지는 일부 의원들도 정리를 하고 비리가 포착됐다는 정치인은 그가 현재 어떤 위치에 있던 화끈하게 정리를 한다면 이야말로 전화위복이 아닌가. 까짓 의석 몇 개 줄면 무슨 상관이랴. 대신 국민의 지지를 얻으면 돌을 주고 금을 사는 격이다.
문제는 한나라 당의 이런 의지와 결단이 가능한가냐다.
한나라 당 지도부는 '읍참마속'이란 말을 잘도 쓰지만 국민들은 '글쎄'다. 보여줘야 믿는다. 국민들이 정치인들에게 얼마나 많은 사기를 당했는가. 좀 뻥을 치면 '미스 코리아'가 여자라고 해도 정치인이 말하면 안 믿을 정도다.
이제 주요한 것은 신뢰의 회복이다.
매일처럼 국회 앞에서는 확성기에서 울리는 목 멘 구호가 가슴을 아프게 한다. 때로는 시대착오적 보수꼴통들의 잠꼬대 같은 소리도 들리지만 대개의 경우 절절한 민초들의 소망이 담겨 있다. 이들은 비록 함량미달이고 믿을 수도 없지만 그래도 자기 손으로 '믿거라' 뽑은 대표들에게 하소연을 하는 것이다.
하라는 정치는 제대로 못하면서 멀쩡한 대통령 탄핵안이나 통과시키고 개혁법안은 문 걸어 잠그고 결사반대하는 대표들이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고 매달리는 것이다. 귀신이 웃을 색깔 논쟁이나 벌리며 사상검증이나 하겠다는 시대착오는 국민의 신뢰를 져버리는 행위다. 빨리 버릴수록 좋다. 국민들이 불쌍하지도 않은가. 선거 때 한 공약이 부끄럽지도 않은가.
국회는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지금 김 덕룡 의원이나 박 성범 의원이 걸려들었지만 국민들은 코웃음을 친다. 어느 누구든지 까치 뱃바닥처럼 순백의 청렴한 의원이 있다면 나와 보라는 것이다. 이게 국민의 정서다.
사람이 어떻게 한 점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있는가.
신은 필요한 것만을 창조한다고 한다. 길가에 피어있는 이름 없는 풀한 포기. 들꽃 한 송이도 모두가 필요한 신의 창조물이다. 심지어 죄 까지도 신은 필요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지금 여의도 의사당에서 벌어지고 있는 온 갓 추문도 신의 섭리라면 극복은 인간의 몫이다.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는 의원이 있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의 의원들은 얼마나 똑똑한 사람들인가. 목숨을 건 경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결심만 하면 할 수 있다.
여의도 의사당에서 신뢰회복의 굿판을 벌리자. 명예훼손이 된 의사당 귀신들도 함께 춤을 추는 굿판을 벌리자. 불신의 불명예를 씻자.
궁한 쥐가 고양이를 문다고 한다. 혹시 궁지에 몰린 정치가 국민을 물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그러면 끝이다. 국민은 어리석은 듯하지만 현명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2006년 4월 17일
(대한민국 중심언론 CBS 뉴스FM98.1 / 음악FM93.9 / TV CH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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