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뻑가게 한 윤시내의 '불꽃 창법'

2006. 4. 11.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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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나를 뻑가게 만든 곡'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그 가수의 독특한 발성에 대한 기억을 솔솔 되살려 내곤 한다. 한 예로 김추자에게 영혼을 빼앗긴 사람이라면 '님은 먼 곳에'(1969)의 "님이 아니면 못 살 걸 그랬지"에서 '아'를 발음할 때 액센트를 팍팍 주는 김추자의 발음이 귀에 쏙 박혔을 것이다. 아마도 지금 10대 남자애들이 20년 쯤 세월이 흐른 뒤에 보아를 회상하면 '마이 네임'의 코러스에 나오는 "(기다리는) 폰 콜(phone call)"을 "퐁커얼"로 듣고 '뻑이 갔다'며 회상할 것이(라고 확신하지만, 걔들이 이런 말을 들으면 불쾌해 할 테니 여기서 줄이겠)다.

이 글의 주인공은 윤시내다. 윤시내는 1980년대 이후 '그대에게 벗어나고파', '공부합시다', '디제이에게' 등의 연발로 히트시키면서 한때 '여자 조용필'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성과를 남긴 인물이다. 그렇지만 1980년대의 윤시내의 노래에는 '충격적'인 면은 그리 없다. '없다'라고 말하면 가수 본인에게나 그 노래를 듣고 충격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생각해 보니 '공부합시다'에서 "안돼 안돼"라고 외치는 부분은 나름대로 충격적이었던 것 같다), 윤시내가 1970년대에 불렀던 곡들이 워낙 충격적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다.

윤시내의 이름이 세간에 알려진 것은 1978년의 '제 2회 서울국제가요제'다. 이 행사에 대해서는 지난번 혜은이의 데뷔를 소개할 때 말했으므로 자세한 것은 생략한다. 단, "1977년 '서울국제가요제'의 신데렐라가 혜은이였다면, 1978년의 신데렐라는 윤시내였다"라고 말하기는 곤란하다. 윤시내는 혜은이처럼 그랑프리를 거머쥐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저건 도대체 뭐야?"라는 반응을 감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문제의 곡은 '공연히'다. 불행히도 다른 곡들에 비해 히트를 못해서 그 후로 많이 흘러나오지 않았고, 그래서 이 곡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텔레비전 스크린을 통해 이 곡을 들은 사람들은 그때의 벙 쪘던 기억을 분명히 되살릴 것이고, 특히나 "공연히 내가 먼저 말했나 봐"에서 '봐'의 발음을 듣고 뇌신경이 이상한 자극을 받았을뿐만 아니라 그 자극이 꽤 오래 지속되는 것을 감지했을 것이다. 그건 창자 깊숙한 곳에서 시작되어 공연장의 천장을 때리고 청자의 머리와 가슴에 꽃혀 내리는 소리였다. 비슷한 시기 발표된 '난 모르겠네'도 마찬가지다.

쇼킹했던 것은 윤시내의 목소리 뿐만은 아니었다. 클레오파트라를 연상시키는 헤어스타일, 도무지 웃음이라곤 지을 것 같지 않은 표정, 그리고 양손을 내저으며 얼굴을 감쌌다가 내리는 독특한 퍼포먼스는 거대한 의문부호를 그리는 것 같았고, '나의 음악을 이해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서늘한 허스키 보이스가 뜨거운 정념의 창법과 결합된 그의 가창은, 인상비평 용어를 사용하면 샤우팅과 토치 싱잉(torch singing)이 뒤섞인 독특한 것이었다.

'공연히'나 '난 모르겠네'에서 충격적인 것은 윤시내의 노래만은 아니었다. 깔짝거리는 기타와 둥둥거리는 베이스가 만들어 내는 훵키한 리듬에 전자 키보드와 관악기가 나왔다 들어갔다하는 사운드는 당시 직업적으로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이 편곡을 해 주었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윤시내의 배후에서 음악을 맡아준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일단은 작곡가 최종혁을 첫 손에 꼽을 수 있겠지만, 윤시내 초기 곡에서 편곡을 맡은 고(故) 신병하를 빼놓을 수 없다. 신병하는 <장군의 아들>, <남부군>, <하얀 전쟁>, <애마부인> 등의 영화음악 및 <사랑과 야망>, <그대 그리고 나> 등의 드라마음악으로 유명해졌지만, 1960년대 중반부터 밴드의 리더이자 베이스주자로 오래 활동한 인물이다. 실제로 윤시내를 발굴한 인물이 신병하이고, 그 무렵 신병하의 그룹은 사계절이고, 이 그룹을 거쳐간 음악인들의 리스트를 뽑는 일도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1970년대 활동한 그룹 사계절의 음반의 표지에 나온 윤시내의 모습을 보는 일은 미스테리같다. 윤시내와 신병하 사이에, 헤비 메탈 밴드 백두산을 이끌었던 유현상의 모습이 등장하는 것도 마찬가지. 그런데 윤시내를 둘러싼 미스테리는 이것만이 아니다. 영화 <별들의 고향>의 사운드트랙이자 최근 어느 회사 광고의 배경음악으로 사용된 "나는 열아홉 살이에요"의 순진무구한 목소리도 윤시내의 것이라는 점이다. 이런 윤시내의 비밀스러운 전사(前史)를 훑어 보면 윤시내 최대의 히트곡 '열애'(1979)에서 그 필살이자 압권의 불꽃 창법(torch singing)마저도 비밀스럽지 않다.

신현준/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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