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덩주의'부터 출발하라

2006. 4. 11.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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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일상의 치열한 전선, 채식주의 가이드…100명의 채식인에겐 100가지 채식이… 처음엔 덩어리 고기를 먹지 않는 것으로 시작하고 계속 공부하는 자세 필요

▣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채식주의자들에게는 모름지기 '결정적 장면'이 있다. 많은 채식주의자들이 동물 도살 장면을 보고 채식을 결심했다고 말한다. 그때부터 '고기는 동물의 주검'이라는 인식이 생기고, 이 인식이 자연스레 육식을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웰빙이나 건강 목적으로 시작한 채식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고기가 징그럽다'는 본능적 거부가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게을러지면 '육식'한다.

'커밍아웃'은 겸손하게

서구에서 정형화된 채식 분류법은 식재료에 따른 단계적 분류다. 채식인은 붉은 고기는 먹지 않되 생선은 먹는 '페스토', 계란과 우유까지 먹는 '락토'나 '락토오보', 그리고 일체의 고기·생선을 먹지 않는 '비건'으로 나뉜다. 그러나 이런 분류법은 한국적 현실에 맞지 않다. 서양은 재료를 변형하지 않는 스테이크 등 일품요리가 대부분인 반면, 한국에선 양념으로 고기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하재홍(29)씨는 "채식의 처음은 '비덩주의'로 출발하라"고 조언한다. 비덩주의는 고기를 덩어리째 먹지 않는 채식 방법이다. 삼겹살, 돈가스 등 고깃덩어리는 아무래도 "이것은 동물 주검이다"라는 연상을 쉽게 불러준다. 소고기가 들어간 미역국, 멸치로 맛을 낸 된장찌개와 이별하기 싫다면 안 해도 좋다. 물론 거만한 비건들이 "말도 안 돼!"라고 코웃음을 칠지라도 기죽을 필요는 없다. 100명의 채식인에게는 100가지의 채식이 있기 때문이다. 자부심을 가지라.

집에서는 비건, 밖에서는 락토오보급의 채식주의자인 우리(29)씨는 "공부하면서 채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1998년 채식을 시작한 지 몇 달 지나지 않아 쓰러진 경험이 있다.

"초기엔 균형 잡힌 식사에 신경써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어요. 쌀밥에 양상추와 치커리만 잔뜩 먹었지요. 그러다 어지럽고 저혈압 증상이 오더니 기어이 쓰러졌어요."

병원에 가보니 단백질 결핍의 영양실조라고 했다. 그 뒤 우리씨는 채식 동호회를 들락거리며 채식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채식에는 꼭 현미밥이나 잡곡밥을 먹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고, 두부나 콩 등 단백질 섭취에도 신경쓰기 시작했다. 채식과 육식 사회에 대한 고전적 명저 <육식의 종말> <음식혁명>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 등은 채식인들이 고이 보는 책들이다. 이 책의 논리에 공감한다면 채식인은 채식주의자로 거듭난다.

그 다음은 사회적 커밍아웃 단계다. 식당에서 주문할 때 "고기 빼주세요"라고 부탁한다. 처음에는 쉽지 않다. 심지어 의도를 파악하지 못한 채 당황하는 분식집 아주머니와 레스토랑 종업원들도 있다. 엉뚱한 아주머니들은 "그럼 단무지도 빼줄까?"라고 묻는다.

자신의 운동성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나는 채식인입니다"라는 말 한마디를 덧붙여라. 하지만 거만하게 보여서는 안 된다. 항상 겸손하게, 당신이 '채식주의 명예대사'임을 명심하라. 분식집 아줌마는 채식주의자와 함께 가야 할 사람이다. 지구 생태계의 지속을 위해서라도 채식주의자는 '까다로운 사람'이라는 선입견을 줘서는 안 된다.

식사 자리에서 논쟁하지 말라

이와 관련해 채식 동호회 '지구사랑 베가'(http://cafe.daum.net/vegetarian)는 단골 식당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다. 채식 메뉴를 내놓는 음식점이나 채식인의 부탁에 호의적인 음식점을 동호회 이름으로 인증하는 프로젝트다. 채식인이 운영하는 채식뷔페는 물론 고객의 요청에 따라 야채김밥, 조개 뺀 칼국수를 만들어주는 음식점들이 망라돼 있다.

외식을 할 때는 산지식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모든 된장찌개에는 멸칫국물이 사용된다. 김치에 젓갈이 포함됨은 물론이다. 떡볶이는 오뎅 국물로 맛을 낸다. 중국집에서는 자장면을 시키지 말고 대신 "간자장에 고기를 빼달라"고 말해야 한다. 박하씨는 "특히 갈빗집의 된장찌개를 조심하라. 육수로 맛을 낸다"고 말했다.

사회적 커밍아웃 단계에서 채식인들은 육식주의자들로부터 공격적인 사상 검증을 받게 된다. 삼겹살 집에서 채식인이 묵묵히 상추에 밥 싸먹고 있을 때, 육식주의자들은 "상추는 생명 아니냐?"고 공격한다. 이에 대한 대처법이나 모범답안은 미리 준비해두는 게 좋다. "분위기 깨지 말고 그냥 넘어가는 게 상책"이라는 채식 5년차 박하씨의 방법도 있고, "비유를 들어 설득한다"는 채식 7개월차 류현정(27)씨의 방법도 있다. 류씨의 설명을 빌리자면, "동물이 손가락이라면 식물은 손톱이다. 손가락은 자르면 소생할 수 없지만, 손톱은 잘라도 다시 자란다. 식물은 동물과 달리 인간이 씨앗을 뿌려 경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식물을 먹더라도 생명체에 대한 미안함을 가져야 함은 채식주의자의 기본이다.

논쟁이 길어지면 안 된다. 식사 자리에서의 연이은 불협화음은 채식주의자들을 '자폐아'로 만들기 십상이다. 함께 먹기가 불편해 주위 사람들과의 만남이 줄어들고 결국 인간관계가 줄어든다. 식사 자리는 채식을 홍보하는 자리이지, 사상 투쟁하는 자리가 아니다. 육식주의자들을 야만인 취급하지 말라.

잘못된 주문이나 음식점주의 실수로 나온 고기가 포함된 음식은 채식주의자들을 시험에 들게 한다. "하루는 으레 채식이려니 비빔밥을 시켰는데, 고기가 수북이 쌓여 허를 찔렸지요. 나는 그럴 땐 지우개 씹듯 꾸역꾸역 먹어요."

과자, 조심 또 조심

비위가 상해 먹을 순 없고, 음식물 쓰레기로 남기자니 채식주의의 정신에 어긋난다. 채식주의자들마다 대응 방법은 다르다. 김민영(35)씨처럼 꾸역꾸역 먹는 사람, 안 먹고 버리는 사람, 포장한 뒤 다른 사람에게 주는 사람 등.

채식인들이 조심할 게 있다. 바로 과자다. 박하씨는 "자극적인 맛을 멀리하다 보니, 과자에 빠지는 수도 있다"고 말했다. 우리씨는 껌을 즐겼다. "씹는 맛이 그리워서 한참 껌을 씹었다"고 말했다. 채식 동호회 사이트에는 고기 성분이 들어 있어서 '먹어선 안 될 과자 리스트'까지 나돌지만, 사실 당 성분이 많은 어떤 과자든 몸에 좋지 않다. 과자에 탐닉한다면 기껏 채식해봐야 도루묵이다. 식품첨가물이 들어간 콩가스, 채식만두 등 냉동·가공식품도 마찬가지다.

이원복 한국채식연합 대표는 "채식에 성공하려면 자기 확신과 함께 공부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채식은 어쩌면 일상의 치열한 전선이다.

주요 채식식당 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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