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운동 때처럼 우리를 막을 수 없다"

2006. 4. 5. 2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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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우리는 계속 싸울 것이다. 우리 부모가 68운동 때 했던 것처럼…. 그들은 우리를 막을 수 없다." "우리들이 그들의 미래다."

"법안에 서명해놓고 시행하지 말라고 요청하는 이런 바보 같은 짓은 듣도 보도 못했다." "시라크, 빌팽, 사르코지, 그들의 시대는 끝났다."

최초고용계약제(CPE)에서 일부 조항을 완화해 파국을 비켜가려던 자크 시라크 대통령의 계산은 여지없이 빗나갔다.

일부 학생연합 대표와 노조대표들이 정부와의 물밑협상을 개시해, 열기가 식을 것으로 예상됐던 4일 프랑스의 시위는 지난달 23일이나 28일 시위 때보다 오히려 더 규모가 커진 듯했다. 파리에서만 70만명(경찰 추산 8만4천명)이 참가하는 등 프랑스 전역 200여 도시에서 310만명(경찰 추산 102만명)이 시위에 나서 '최초고용계약제 철회'를 주장했다. 이날 시위에는 주도세력이던 대학생과 고등학생, 노조원들뿐 아니라 모든 야당세력과 실업자, 비정규직·임시직 노동자들까지 가세했다.

화창한 봄날씨 속에 시작된 이날 오후 파리의 시가행진은 '축제와 저항'이 어우러지는 프랑스식 시위의 전형이었다. 파리 동쪽 레퓌블리크광장은 소풍장소로 착각할 만큼 형형색색의 각종 단체 깃발, 구호가 적힌 고무풍선과 플래카드, 기발한 시위도구, 노래와 춤, 구호로 넘쳐났다. 광장을 출발한 시위행렬은 바스티유광장, 이탈리광장으로 이어지는 약 5㎞의 4차선 도로와 인도를 가득 메웠다.

행진에 참가한 파리 시내의 한 고등학교 지리교사는 "정부가 항복할 지점에 거의 다다랐다"며 "우리가 항복한다면 정부가 젊은이들뿐 아니라 모든 노동자들에게 해악을 끼치는, 더 포괄적인 노동개혁을 강행하려 들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평화적인 분위기는 지난 한달 동안의 시위와 마찬가지로 어둠이 깔리면서 달라졌다. 저녁 무렵 행진의 종착점인 이탈리광장에서 일부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하면서 돌과 최루탄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파리에서만 이른바 '카쇠르'(부수는 자들)로 불리는 폭력시위자 383명이 체포됐고, 시위대 30명과 경찰 4명이 다쳤다. 파리 이외 지역에선 243명이 체포됐다. 주요 노조들의 총파업에도 불구하고 파리지하철 등 대중교통 수단은 거의 정상적으로 운행됐다.

시라크 대통령의 법안서명과 양보안 제시 이후 처음 벌어진 이날 시위는 최초고용계약제 철회를 요구하는 쪽의 협상력을 크게 높여줄 것으로 보인다. 최대노조인 노동총동맹(CGT)의 베르나르 티보 위원장은 "오늘 시위는 (정부에)치명적 타격을 가능케 했다"며 "협상을 하겠지만 단순한 조정에 대한 협상은 거부한다"고 말했다. 민주노총(CFDT)의 프랑수아 세레크 위원장도 "분명히 정부가 후퇴하고 있다"며 "끝까지 밀어붙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여당이 최초고용계약제 철회에 대해 논의할 것을 합의하는 조건에서만 여당 의원들을 만나기로 노조 지도자들 사이에서 합의했다고 강조했다.

시라크 대통령이 협상권한을 여당인 대중운동연합(UMP) 쪽에 일임한 가운데 하원의 여당 원내대표인 베르나르 아쿠아예 의원은 "법안 수정을 논의할 여당내 소위원회 명단이 5일 중 구성돼 의회에 통보될 것"이라며 "학생과 노동계와의 협상도 이날 시작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노동계·학생과의 협상에서 모든 사안을 논의한 뒤 의회에 제출할 수정 법안이 만들어질 것임을 내비쳤다.

대중운동연합 총재인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은 이와 관련해 노동계 등에 "금기사항 없는 협상"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라크 대통령이 제시한 타협안 이상의 양보를 할 가능성을 드러낸 대목으로 볼 수 있다. 이번 주말부터 시작돼 부활절 휴가 내내 이뤄질 협상에서는 힘든 줄다리기가 예상된다. 하지만 시위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에서 법안을 손질하는 데 그칠 경우에는 부활절 휴가 이후 또다시 대규모 시위가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도미니크 드빌팽 총리는 이날 의회에 출석해 "가장 우선해야 할 일은 현재의 위기를 벗어나는 것"이라며 최초고용계약제에 대한 확신을 버리지 않고 있음을 시사했다. 6일 발행될 예정인 주간 <렉스프레스>의 조사를 보면, 드빌팽의 지지도는 지난 1월의 48%에서 절반 이하인 28%로 급락했다. 이번 사태로 반사이익을 얻고 있는 사르코지 내무장관은 최근 조사와 비슷한 수준인 48%였다. 응답자의 45%는 드빌팽 총리가 사임해야 한다고 답했다.

파리/류재훈 기자 hoonie@hani.co.kr

인터뷰 / 파리10대학 학생대표

"68년 자유외침과 고용안정 요구는 한갈래"

"자크 시라크 대통령이 우리들의 요구에 귀기울여 왔다고 얘기했지만, 그건 거짓말이다. 시험 채용 기간을 1년으로 줄이는 것은 같은 방향의 똑같은 조처이다. 해고 이유가 정당한 것이든 아니든 우리는 그걸 들을 권리가 있다. 우리는 노조들과 연대해 최초고용계약제가 철회될 때까지 파업과 시위를 계속해 나갈 것이다."

파리10대학(낭테르대학)의 학생 대표 라시드 타예브(법학 전공 석사과정 1년차·사진)는 4일 '대파업의 날' 시위에 앞서 "타협은 있을 수 없다"며 "철회 때까지 시위를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최초고용계약제 철회에 대한 정부와 시라크의 무응답과 탄압, 우리들의 미래를 옥죄는 결정에 대해 투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960년대 '68운동'의 진원지였던 파리 교외 낭테르의 제10대학은 이번 최초고용계약 반대운동에서도 중심에 서 있다.

그는 파리 10대학 대표로 지난 1~2일 릴에서 열린 전국학생조정위원회에 다녀왔다. 조정위에는 67개 대학과 47개 고등학교 등 전국 114개 학교 대표 500여명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30여시간에 걸쳐 시라크 대통령의 법안 서명 이후 대책과 투쟁방향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그는 조정위가 투표 끝에 최초고용계약제뿐 아니라 지난해 시행된 신규채용계약(CNE) 등 고용불안을 부추기는 모든 형태의 제도로 투쟁 대상을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고 전했다. 4일 시위 이후에도 고속도로와 공공기관 점거시위, 경찰의 폭력에 항의하는 법원 시위 등을 매일 조직해 나가고, 오는 11일엔 다시 전국적인 대규모 시위에 이어 부활절 휴가기간에도 학교봉쇄를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68운동과 비교해 달라는 주문에, "사회운동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며 "68운동이 자유를 외친 운동이었다면 이번 반대시위는 우리의 미래와 직접 연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더욱 사회적 문제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시위가 고용불안을 넘어 불법체류자 문제 등으로까지 확대되는 것은 반대한다며, 고용불안 해소와 미래의 고용안정 확보에 국한돼야 한다고 말했다. 따라서 현재로선 정권퇴진 운동이나 혁명적 상황을 바라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는 "기회주의적인 사회당이 타협하는 것에 대해선 관여치 않겠지만 노조들은 원칙적으로 타협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노조에 대해 신뢰를 표시했다. 그는 자신도 "시간제 노동자"라며 "노조가 학생들과 함께 가야만 하고, 갈 수 있는 이유는 일하는 학생들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파리/류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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