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언론 매수 프로젝트!

2006. 3. 21.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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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돈으로 기사 사고 거짓정보 흘리는 여론·심리전에 올인한 부시 정권미 국방부의 20가지 홍보업무 대행한 '링컨그룹'은 추문 당사자로 부상

▣ 정인환 기자/ 한겨레 국제부 inhwan@hani.co.kr

"조지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 관련 정보를 바탕으로 정책 결정을 한 게 아니라, 이미 결정된 정책을 정당화하는 데 이를 활용했다. 부시 행정부는 전쟁에 앞서 이라크와 관련한 어떤 전략적 수준의 정보평가를 요청하지도 않았고, 따라서 관련 정보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

<알이라키야>와 <알사바>, 노골적인 친미

중앙정보국(CIA) 출신으로 현재 미 조지타운대학에서 안보정책 연구를 맡고 있는 폴 필러는 외교·안보 전문지 <포린어페어스> 3·4월호에서 이렇게 적었다. 지난 2000~2005년 중앙정보국에서 근동·남아시아 담당 국가정보관을 지낸 필러는 침공이 준비되던 때부터 최근까지 이라크 관련 정보를 종합 분석하는 최고 책임자였다. 이라크 전쟁을 "근래 들어 미국이 결정한 가장 중요한 정책 중 하나임에도, 정책 결정 과정에서 정보의 역할이 가장 미미했던 사례"라고 지적한 그는 "이라크와 관련해 행정부 쪽에서 어떤 형태로든 정보 분석을 의뢰해온 것은 전쟁이 벌어진 뒤 1년여 뒤가 처음이었다"고 강조했다.

부시 행정부가 잘못된 정보에 기반해 이라크 침공을 강행했다는 점엔 이미 미국 내에서조차 이론이 없다. 이 과정에서 적극적인 정보 조작이 있었다는 점에 대해서도 공화당 일부 진영을 빼고는 반박할 이들이 많지 않을 것이다. 전투기 조종사 차림의 부시 대통령이 '과업 완수'라고 쓴 펼침막을 배경으로 '주요 전투 종료 선언'을 한 직후부터 미국에게 이라크는 '제2의 베트남'이 될 것이란 말이 나왔다. 그러니 필러의 지적은 오히려 새삼스럽게 들린다.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와 관련해 바빠진 것은 오히려 침공 이후부터였다. 명분 없는 침공에 대한 반발을 극소화하기 위해 미군은 이라크인들의 '마음'을 얻는 데 골몰했다. 여론·심리전이 필요했다. 미군이 후세인 정권 시절 국영방송 설비를 '접수'해 구성한 이라크미디어네트워크(IMN·이하 네트워크)는 그 전초기지였다. 친미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온 <알이라키야> 텔레비전과 일간지 <알사바> 등이 네트워크 소속이다.

이라크에서 벌이고 있는 부시 행정부의 선전선동 전략을 추적해온 미 시민단체 '미디어와 민주주의 센터'의 자료를 보면, 네트워크의 시작은 2003년 3월 미국의 이라크 침공 직후로 거슬로 올라간다. 당시 조지 부시 행정부는 다국적군 임시행정처(CPA)의 전신인 이라크재건인도지원청을 통해 이라크에 새로운 언론기관을 만들기로 했다. 후세인 정권 시절 국영방송 설비를 활용해 '세계적 수준'의 언론사를 만들어내겠다는 게 부시 행정부의 구상이었다. 이를 위해 미 국방부는 샌디에이고에 본사를 둔 사익(SAIC)이란 업체와 1억820만달러짜리 계약을 맺는다. 초기 투여자금 1억달러는 미 국방부 산하 심리전 전담부서 예산으로 충당했다.

링컨그룹, 미 의회 조사대상으로 떠올라

하지만 출범한 지 불과 몇 달이 지나지 않아 네트워크에 대한 비판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임시행정처는 이미 같은 해 6월께부터 이라크 언론들이 저항세력의 공세를 부추기고 있다며, 보도지침을 마련하고 검열에 나서기 시작했다. 당시 <워싱턴포스트> 등의 보도를 보면, 보도지침을 지키지 않는 언론사엔 임시행정처의 명령을 받은 무장한 미군이 들이닥치는 일까지 되풀이됐다.

네트워크에 참여했던 현지 언론인들이 임시행정처의 과도한 개입에 항의해 집단 사표를 내는 일이 이어졌다. 대다수 이라크인들은 네트워크를 미 임시행정처의 공보부서쯤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결국 침공 1주년인 2004년 3월20일 네트워크는 이라크공영방송(Iraqi Public Service Broadcaster)으로 이름을 바꿨다. 이름을 바꿨다고 달라진 것은 없다. 미군에 붙잡힌 '테러범'이 등장해 "나는 이렇게 죄없는 이들의 목을 잘랐다"는 식으로 저항세력의 '만행상'을 증언하는 프로그램으로 유명한 <알이라키야>는 여전히 이라크 주민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의 더 적극적인 여론·심리전은 주로 민간업체를 통해 이뤄졌다. 그동안 산발적으로 보도돼온 이라크 종교·언론인 매수나 미군이 작성한 기사를 뒷돈을 주고 싣는 등의 일들이 미 국방부 예산으로 진행돼왔다. 이런 민간업체의 대표주자로 최근 미 국방부와 의회의 조사 대상으로 떠오른 '링컨그룹'을 꼽을 수 있다. 이 업체는 지난 2년여 동안 미 국방부가 발주한 '홍보 업무' 계약을 20여 건이나 따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03년 설립된 링컨그룹의 주요 사업 영역은 정치 캠페인과 정보 서비스 제공이다. 현재 '세계 로비의 심장부'로 불리는 워싱턴 중심가 케이 스트리트에 본사를 두고 있는 링컨그룹은 조만간 백악관에 인접한 펜실베이니아가로 사무실을 옮길 예정이다. 이전 예정지는 희대의 로비 스캔들로 배후로 공화당 지도부를 뒤흔들고 있는 로비스트 잭 아브라모비치가 운영했던 '시그네이처'란 레스토랑이 있던 장소다.

그동안 산발적으로 언론에 노출됐던 이 업체의 내막에 대해선 올 들어 <포천>과 <뉴욕타임스> 등이 잇따라 집중 보도하고 있다. 이들 매체는 2년여 전만 해도 별 볼일 없던 '이라크 프로파간다 납품업체'인 링컨그룹이 짧은 기간 동안 급속도로 성장해나가는 과정을 비교적 소상히 파헤쳤다.

'링컨그룹'의 크레이그는 누구인가

링컨그룹은 영국 출신의 크리스티안 베일리와 미 해병 출신의 페이지 크레이그가 설립했다. 옥스퍼드대학을 졸업한 뒤 지난 90년대 말 '닷컴 열풍'을 따라 실리콘밸리로 옮겨온 베일리는 사업이 지지부진하자, 뉴욕을 거쳐 워싱턴으로 무대를 옮겨왔다. 미 육군사관학교를 중퇴한 크레이그는 해병에 입대해 정보 업무를 맡아오다 2000년 전역한 뒤 '안보 영역'에서 사업을 모색해왔다. 이들이 '이라크 특수'를 노리고 링컨그룹을 창업한 뒤 제일 먼저 뛰어든 사업은 막대한 양의 이라크 고철을 긁어모아 수출하는 일이었다.

출발은 좌충우돌이었다. 인도네시아계 은행을 통해 거액을 대출받은 링컨그룹은 이라크 남부 바스라항에 다량의 고철을 수집해 쌓아뒀지만, 이라크 과도정부가 고철 수출 금지령을 내리면서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이어 북부 모술에 벽돌공장을 세우는 일을 추진했다. 이들은 텍사스주에서 5만달러를 들여 이동식 벽돌 생산기계 2대를 확보하고 투자자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들이 마련한 벽돌 기계는 가정용이나 소규모 업체용이었다. 벽돌 대량생산에 사용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링컨그룹은 결국 이라크 주둔 미군 쪽에서 활로를 마련하기로 했다. 바그다드 중심가 '그린존'에 장소를 마련한 이들은 부시 행정부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렌던그룹과 제휴관계를 맺고 '저항세력 격퇴와 주권정부 구성을 위한 미군의 노력'에 대해 이라크 국민들에게 홍보하는 500만달러짜리 계약을 따냈다. 렌던그룹은 이라크 출신 망명자들의 거짓증언을 버무려 침공의 명분을 만들어낸 '진군의 나팔수' 노릇을 한 업체로 유명하다.

당시 미군 쪽이 발주한 계약은 "이라크 주민들에게 미군의 목표를 정확히 전달해 그들의 지원을 얻어내는 것"에 목적이 있었다. 계약 요구조건 가운데 하나는 이라크 현지 간행물에 미군 쪽이 작성한 기사를 싣도록 하는 것이었다는 게 퇴직한 링컨그룹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렌던그룹은 계약을 따낸 직후 발을 뺐고, 링컨그룹이 혼자서 일을 처리하면서 문제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링컨그룹은 미군 쪽에 직원과 업무능력이 '제대로 준비되지 못했다'고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링컨그룹의 사업은 탄탄대로였다. 2004년 말 크레이그는 노스캐롤라이나주 포트 브래그의 미 제18공수단으로 날아갔다. 이 부대는 이라크에서 여론·심리전 임무를 맡을 예정이었다. 링컨그룹 쪽은 현장에서 브리핑을 열고 자기 업체가 군의 '정보작전'을 지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링컨그룹이 단순 홍보업무가 아닌 외국 적대세력에게 영향을 끼치기 위해 필요하다면 거짓 정보까지 흘려야 하는 고도의 프로파간다에 간여했다는 간접 증거로 볼 수 있다.

이런 가운데 "미 국방부가 미군이 쓴 기사를 이라크 언론에 뒷돈을 주고 싣도록 했다"는 지난해 11월 <로스앤젤레스타임스>의 보도를 시작으로 링컨그룹 관련 의혹이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같은 해 12월 <abc송>은 내부 문건을 입수해 링컨그룹이 미군에 유리하도록 사실을 왜곡하는 등 이른바 '소문 통제'에 적극 나섰다고 전했다. 실제로 지난해 여름 이라크 주둔 미군은 서부 안바르 지역에서 공세적인 선동전을 수행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서부 미션 프로젝트'로 불린 이 작전의 민간 쪽 사업자는 다름 아닌 링컨그룹이었다.

미 국방부, 이미 알고 있는 걸 조사?

추문이 이어지면서 미 국방부 감찰관실은 지난 1월부터 링컨그룹에 대한 감사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앞서 <로스앤젤레스타임스> 등의 보도가 나온 뒤 이라크 주둔 미군사령관 조지 케이시 장군도 별도의 조사를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케이시 장군의 자체 조사 결과는 이미 나온 것으로 알려졌지만, 언론에 공개되지는 않고 있다. 그렇지만 링컨그룹의 행보에는 여전히 거침이 없다. 지난 1월 베일리는 버지니아주의 고급 주택가에서 열린 미 국무부 간부의 환송회에 참석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인사는 곧 바그다드 주재 미 대사관으로 자리를 옮기게 됐는데, 담당 업무는 민간업체와 맺는 계약업무를 총괄하는 것이라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링컨그룹 관련 의혹이 보도되기 시작한 지난해 11월30일 미 국무부의 정례 브리핑에선 흥미로운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기자들의 잇따른 질문에 숀 매코맥 국무부 대변인은 "국방부가 보도 내용에 대해 조사를 하고 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당시 한 기자는 이렇게 반문했다. "국방부가 보도를 보고 조사에 나설 이유가 있나?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면, 국방부가 이미 알고 있을 텐데." 이라크와 관련해 워싱턴에서 나오는 얘기 가운데 여론·심리전의 일환이거나 거짓말이 아닌 것이 도대체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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