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스님·처사님들과 이웃사촌 된 사연

2005. 12. 29.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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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들이 오피스텔에 산다고?

산중의 절들이 주택가로 내려오고 속세를 떠난 스님들이 대중 속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이 현실이긴 하지만 오피스텔에 사는 스님들의 모습은 다소 생경하다.

서울시 종로구 수송동 현대식 주상복합 건물 두산 위브 파빌리온. 건물 뒤편으로는 한국 불교의 종가(宗家)인 조계사가 있고, 좌측으로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전통문화의 거리 인사동이 있다.

지리적 위치 때문인지 이곳 오피스텔은 여느 오피스텔과는 달리 스님들의 출입이 잦아 이채를 띤다. 전체 440여가구 중 20% 정도가 불교관련 단체의 사무실이거나 조계사에서 단기 임무를 보는 스님들의 숙소이다. 입주자 가운데 불교신자 비율도 높아 오피스텔 로비나 복도에서 합장 인사를 나누는 모습도 흔하게 볼 수 있다.

"풍찬노숙(風餐露宿)을 마다하지 않아야 할 스님들이 웬 오피스텔이냐"며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도심 오피스텔 생활이 낯설고 불편하기는 스님들도 마찬가지. '속세에서 하다 하다 안되면 저 절로 가겠다'는 사바 중생들의 푸념처럼 스님들에게 산중만큼 마음 편한 곳도 없다. 그런 산중을 버리고 세속에 들어와 있는 스님들도 편치 않기는 마찬가지. 본찰의 업무와 관련해 두산 위브에 숙소를 두고 있는 한 스님은 "무명 장의적삼(승복)이 때로는 갑옷도 되고 짐이 되기도 한다"면서 불편하고 낯선 도심 선방생활의 일면을 털어놨다.

현재 두산 위브에는 '해인승가대학 동문회' 사무실을 비롯해 성철 스님 문화사업단체인 '백련불교문화재단' '설법연구원' '일승회' '청량문화연구회' 등이 들어와 있다. 이외에도 전국 유명 사찰의 홈페이지를 전문으로 제작하는 '마하넷(www.mahanet.net)', 불교식 장례서비스를 대행하는 '연화회(www.yunwha.com)' 등 불교관련 업체들이 입주해 있다.

불교관련 단체 말고도 이곳에는 전생연구소, 동방파동명상연구소, 관상, 주역, 노자, 장자 강론장과 약초와 효소 강의장도 마련돼 있다. 마치 '도심의 계룡산'을 연상케 한다.

달마조사 관상비전(達磨祖師 觀相비傳)과 주역을 강의하고 있는 한문학자 권용운 선생은 "아무래도 조계사나 인사동 부근을 지나 다니는 사람들 중에는 불교나 영적 세계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 많고 또 그런 사람들이 자주 모이다 보니 비슷한 기(氣)가 흐르는 모양"이라며 "강의가 있다는 소문이 나면 알음알음으로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인간'이 화두이고, 죽을 때까지 사람을 만나는 게 우리들의 삶이다. 사람의 얼굴에는 그 사람의 건강 상태와 과거, 현재, 미래의 정보가 들어 있다"면서 "사람을 알아보는 지혜 가운데 상을 읽는 기술보다 실용적인 것은 없다"고 말했다.

도심 한복판, 현대식 건물에 자리를 잡은 전생연구소도 눈길을 끄는 곳이다. 인체가 판독되고, 체세포가 복제되는 현실에서 전생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병리학을 연구하던 여대생에서 6년 전 어느날 우연히 자신에게 전생을 읽는 능력이 있음을 알아내고, 그 방면의 공부에 몰두했다는 박진녀씨. 깊고 그윽한 그의 눈길은 마치 X선이 인체를 투시하듯 묘한 느낌을 준다. "지금 행복한 사람은 전생을 알 필요가 없다"면서 "현실이나 상식적으로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극한의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의 전생만을 읽어준다"고 말했다. 그는 "전생의 성적표가 곧 현실이라면서 현재의 고통은 전생의 업"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그 업을 지워나가는 것이 삶의 과정이라고 받아들일 때 극한의 고통에서 해방감과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고 덧붙였다.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등 조선시대 4대궁이 인근에 있고, 조선조 왕가와 권문세가들의 집터와 한국 불교의 종가가 있는 종로구 수송동, 인사동, 견지동 일대. 가장 한국적인 전통과 불교 문화가 흐르는 곳. 최첨단 현대식 오피스텔에 차려진 선방과 전래 문화의 공간들은 서울이라는 도시의 공간에서 부조화 속의 조화를 이뤄내고 있다.

〈글 김후남기자 khn@kyunghyang.com〉

〈사진 김영민기자 viol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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