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에] 새벽이 없는 밤은 없다

2005. 12. 23.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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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조 < 신부/천주교 압구정1동성당 주임 >

"시간이란 야박스러운 주막 주인과 같다.

그는 나가는 손님에게는 가볍게 작별의 손을 흔든다.

그리고 들어오는 새 손님에겐 호들갑을 떨며 달려가서 악수를 청한다.

반길 때는 웃는 모습을 하고,헤어질 때는 언제나 한숨을 쉰다."

몇 해 전인가 셰익스피어의 생가(生家)를 방문했을 때,그가 남긴 비망록에서 읽은 구절이다.

이제 2005년의 마지막 달이 소리 없이 저물어가고 있다.

이맘때면 누구나 지나쳐 온 한 해의 발자취를 더듬어 보게 된다.

이를 데 없이 혼란스러웠던 한 해였다.

실로 엄청난 변화를 우리에게 가져 온 한 해였다.

우리에게 아픔이 크면 클수록,슬픔이 깊으면 깊을수록,괴로움이 많으면 많을수록 예수 성탄의 의미는 더욱 절실하게 우리 가슴에 와 닿는다.

현대인들,특히 가난하고 고통 받는 모든 사람의 기쁨과 희망,슬픔과 고뇌는 바로 그 분 제자들의 기쁨과 희망이며 슬픔과 고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과 자기를 무의미하게 비교해 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남의 성공 사례는 위대하다고 보고,자신의 성공은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여긴다.

따라서 자신의 고통이나 실패는 자기 일생을 완전히 망칠 만큼 중대사로 받아들여,한번 실패하면 '나 같은 존재가 감히 그런 일을 꿈꾸다니…'하면서 자기 학대를 일삼는다.

우리가 얼마나 실패를 했건 그것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서 우리 모두 인간이기에 실패를 겪을 수 있다.

"당신이 물에 빠졌다고 반드시 익사하는 것이 아니라,물에 빠진 후 가만히 있으면 익사하게 된다." 미국 정신력 개발의 권위자 지그 지글러의 말이다.

절망이 문제가 아니라 절망 상태에서 가지는 마음 자세가 문제라는 것이다.

사람은 '절망할 때' 자신에 대한 믿음이 약해진다.

'사랑하지 않을 때' 이웃에 대한 믿음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엉뚱한 마음을 품을 때' 하느님께 대한 믿음이 허물어지고 만다.

목적지를 향한 흔들림 없는 믿음이야말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힘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이다.

뜻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길이 있는 법이다.

잠자리에서 일어나든 일어나지 않든 하루는 시작된다.

인생이 짧다하여 단거리 선수가 되지 아니하며,괴로움의 날이 길다하여 우러러 볼 하늘을 놓치지는 말아야 한다.

장애물 달리기 선수가 장애물을 탓할 수 있겠는가.

자연의 질서도,역사의 질서도 우리에게 새벽이 없는 밤을 보여 준 일은 없다.

사제들에게 교회는 유서(遺書)를 미리 작성해 둘 것을 권고하고 있는데,건강 상태나 살림살이의 변동 상황을 고려해 매년 초에 그것을 갱신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유서 갱신을 할 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은 지금 이 시간,내가 눈을 감는다면 나의 묘비명은 어떻게 적혀져야 마땅할까 하는 점이다.

물론 묘비명을 남길 만한 삶이 아니더라도 무방하다.

그저 삶의 계가(計家)를 보다 선명하게 압축하기 위해서 스스로 적어보는 묘비명은 잘됐건 못됐건,옳건 그르건 간에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다는 생각이다.

예컨대 영국의 버나드 쇼도 그의 '생전 묘비명'을 남겼다.

"우물쭈물하다가 이럴 줄 알았다." 스스로 적은 묘비명에서도 그의 인품은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독설과 자학이 번뜩이지 않는가.

하루의 해도 새로운 빛으로 다시 떠오르기 위해서 저문다.

하루의 태양이 지고 뜨는 뜻이 그렇게도 무겁다면 한 해의 낙조는 천근 만근의 무게와도 바꿀 수 없다.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려고 지는 해는 더욱 더 그렇다.

저무는 2005년의 황혼을 아름답게 물들이고 솟아오르는 새 해의 새 태양을 온 몸으로 맞이하자.벅찬 삶의 짐,삶의 십자가도 정면으로 맞닥뜨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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