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문화예술결산-④문학

2005. 12. 15.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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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정천기 기자 = 올해 우리 문학계에는 굵직한 행사가 유난히 많았다.

무엇보다 분단 후 처음으로 남북 문인이 한 자리에 모인 역사적인 남북작가대회가 열렸고, 이에 앞서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오에 겐자부로 등 세계적 작가들이 대거 참가한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이 개최됐다. 이어 월레 소잉카 등이 참가한 금강산 세계평화시인대회,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주빈국 문화행사 등 한국문학을 세계무대에 알리는 국내외 행사가 꼬리를 물고 개최됐다.

▲남북작가대회 등 대규모 문학행사 잇달아 = 7월20-25일 평양, 백두산, 묘향산에서 열린 '6.15 공동선언 실천을 위한 민족작가대회'(남북작가대회)는 우리 문학사에서 한 획을 그은 행사였다. 남북 정상의 6.15 공동선언이 가져온 화해분위기에 따라 열릴 수 있었던 이 행사는 이념대립 등으로 남북 문단이 갈라선 지 60년만의 상봉이었다.

남북작가대회는 당초 지난해 8월 개최하기로 했다가 남북관계의 경색으로 무기한 연기되는 등 우여곡절 끝에 열렸다. 행사기간에 시인 고은, 소설가 황석영, 평론가 백낙청 등 100여명의 남측 문인대표단은 북측 시인 오영재, 소설가 홍석중 등과 백두산 천지에서 해맞이를 하며 민족과 문학의 통일을 외쳤다.

남북 작가들은 이 대회를 통해 6.15민족문학인협회 결성, 통일문학상 제정, '통일문학' 발행 등 구체적 교류방안에 합의했고, 현재 이를 실천하기 위한 남북간 실무협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에 앞서 5월24-26일 세종문화회관에서는 대산문화재단이 주관하는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이 개최됐다. 오에 겐자부로를 비롯해 프랑스의 석학 장 보드리야르, 터키의 오르한 파묵, 프랑스의 르 클레지오, 칠레의 루이스 세풀베다, 미국의 개리 스나이더, 케냐의 응구기 와 시옹오, 중국의 모옌 등 세계적 작가들이 대거 참가해 '평화를 위한 글쓰기'라는 주제로 국내 작가들과 함께 열띤 토론을 벌였다. 참가자들은 냉전의 현장인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을 방문해 한반도의 분단현실을 두 눈으로 확인하고 돌아갔다.

고은 시인이 대회장을 맡아 8월12일 금강산에서 열린 '2005 만해축전-세계평화시인대회'에는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월레 소잉카, 미국의 계관시인 데이비드 핀스키 등 국내외 시인 100여명이 참가했다. 이들 역시 '평화의 시'를 낭송하며 한반도의 분단 극복과 세계평화를 염원했다.

제2회 서울국제문학포럼과 세계평화시인대회가 외국 작가를 국내로 끌어들여 한반도의 분단현실과 한국의 문학을 세계에 알린 행사였다면,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주빈국 초청을 계기로 독일 전역에서 펼쳐진 한국작가 순회 낭독회는 한국문학을 해외에 직접 알린 행사였다.

고은, 황석영, 김훈, 황지우, 신경숙, 김영하, 조경란 등 시인과 소설가들은 10월 본행사를 앞두고 3월부터 라이프치히, 본, 쾰른, 뒤셀도르프, 뮌헨, 하이델베르크, 함부르크, 베를린 등 독일의 주요 도시를 순회하며 작품 낭독회와 토론회 등을 잇달아 개최했다.

문학평론가 신수정은 '문학사상' 12월호에 기고한 글에서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 주빈국 행사는 우리 문학의 대외적 위상을 드높이는 계기로 작용했다"면서 "이 행사의 의의는 그것을 치러내는 과정에서 우리 문학의 내부를 결산하고 되돌아보는 시간을 경험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낭독회와 독자와의 만남의 시간에 소개할 문인들이 선정되고 그들의 대표작이 번역됐으며, 도서전에 전시될 우리나라 대표 작가와 시인 12명을 선정한 것은 우리 문학의 정전(canon)을 확정짓고 전범화한 작업이었다"고 평가했다.

이 외에 독도영유권 문제로 일본과 갈등을 빚자 한국시인협회는 4월 시인 100여명과 함께 독도를 방문해 '독도사랑 시낭송회'를 열었다. 한국문학평화포럼은 사북, 백령도, 울진, 거창, 여주 등 역사의 현장과 사회적 현안이 있는 지역을 순회하며 '한반도 평화와 상생을 위한 문학축전'을 개최했다.

▲사회성ㆍ역사성 갖는 문학적 경향 = 올해 대규모 문학행사가 잦았기 때문인지 주목받을만한 작품의 생산은 상대적으로 드물었다.

문학평론가 정과리 연세대 국문학과 교수는 "두드러진 경향은 없어 보인다"고 올해 문학적 흐름을 분석했다. 그러면서 "2000년을 전후해 절정에 올랐던 사생활과 사적인 소설쓰기가 2003-2004년 김영하 김연수 심윤경 등의 작품을 통해 사회성과 역사성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을 보였고, 올해는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진단했다.

김별아는 역사소설 '미실'로 1억원 고료 제1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이현수는 기생들의 이야기를 다룬 장편소설 '신 기생뎐'을 통해 한국사회의 고유한 하위문화를 복원하기도 했다. 1990년대를 대표해온 작가인 은희경은 고향 소도시를 무대로 서사규모를 키운 장편 '비밀과 거짓말'을 내놓으며 새로운 문학적 돌파구를 찾으려 했다.

지난해 박완서의 장편 '그 남자네 집', 이청준의 소설집 '꽃 지고 강물 흘러', 한승원의 소설집 '잠수거미', 서정인 연작소설 '모구실' 등 중진작가들의 작품활동이 활발했으나 올해는 중진작가들의 발표량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편이다.

그러나 김원일은 지난해 소설집 '물방울 하나 떨어지면'을 낸데 이어 인혁당 재건위 사건을 다룬 연작소설 '푸른 혼'을 올해 2월 출간해 제20회 만해문학상을 수상했다. 송영은 현대 사회의 소외된 인간을 다룬 소설집 '새벽의 만찬', 전상국은 9년만에 신작 소설집 '온 생애의 한 순간'을 냈다.

박범신의 장편소설 '나마스테', 박상륭의 소설집 '소설법', 윤후명의 장편소설 '삼국유사 읽는 호텔', 미국에 사는 김지원의 장편소설 '물빛 목소리', 최윤의 소설집 '첫 만남', 김원우의 소설집 '젊은 천사' 등도 올해 출간됐다. 김준성 전 부총리는 85세 고령인데도 여덟 번째 소설집 '복제인간'을 내놓았다.

조세희의 연작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공'은 1978년 초판 이후 37년간 지속적인 사랑을 받으며 올해 12월 200쇄를 출간해 우리 문학사에 유례없는 출판기록을 세웠다. 김훈은 단편소설 '언니의 폐경'으로 황순원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좋은 작품을 지속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중견작가들은 지속적인 작품활동을 통해 문단의 기둥역할을 했다. 풍요로운 입담과 해학을 보여온 성석제는 연초에 소설집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노래'를 펴냈다. 제주도에서 집필활동을 하는 윤대녕은 1980년대에 젊은 시절을 보낸 남녀의 사랑을 다룬 장편소설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를 발표했다.

공지영은 베스트셀러 '봉순이 언니' 이후 7년 만에 사형수들의 이야기를 다룬 전작 장편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내놓아 독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어냈다. 권지예는 소설집 '꽃게 무덤'으로 올해 동인문학상을 수상했고, 시인 최영미는 첫 장편소설 '흉터와 무늬', 김형경은 한류스타 배용준이 출연한 영화 '외출'을 소설로 다시 써 주목받기도 했다.

이승우는 소설집 '심인광고', 구효서는 소설집 '시계가 걸렸던 자리', 김인숙은 소설집 '그 여자의 자서전', 공선옥은 연작소설 '유랑가족', 배수아는 장편소설 '당나귀들', 정미경은 장편소설 '이상한 슬픔의 원더랜드', 박상우는 장편소설 '지붕', 임영태는 복제인간을 다룬 장편소설 '여기부터 천국입니다', 은미희는 사당패의 사랑과 애환을 그린 장편소설 '바람의 노래', 임동헌은 소설집 '별' 등을 발표하며 꾸준한 창작역량을 보였다.

평론가 신수정은 "올해 소설계의 특징은 문단 주류의 하향화 조짐"이라며 중견ㆍ중진작가들의 활동에 비해 새로운 세대의 문학이 활발해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제29회 이상문학상에 한강의 '몽고반점', 제50회 현대문학상에 윤성희의 '유턴지점에 보물지도를 묻다'가 이런 경향의 출발신호였던 셈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2년전 김연수가 동인문학상을, 지난해 김영하가 이산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동인문학상을 제패하고 김경욱이 한국일보문학상, 정이현이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문단 주류의 하향화를 이끌었다는 것이다.

올해도 이런 현상은 이어져 박민규가 첫 소설집 '카스테라'로 신동엽창작상을 수상했고, 김연수는 소설집 '나는 유령작가입니다'로 대산문학상을 받았다. 천운영은 첫 장편소설 '잘가라, 서커스', 김경욱은 소설집 '장국영이 죽었다고?'를 발표하며 문단의 주류작가로 자리를 잡아갔다.

전성태의 '국경을 넘는 일', 백가흠의 '귀뚜라미가 온다', 손홍규의 '사람의 신화', 편혜영의 '아오이가든', 박성원의 '우리는 달려간다', 김이은의 '마다가스카르 자살예방센터', 김종은의 '신선한 생선 사나이', 김숨의 '투견', 이기호의 '최순덕 성령 충만기', 이신조의 '새로운 천사', 오현종의 '너는 마녀야', 신장현의 '강남 개그', 김도연의 '십오야월', 구경미의 '노는 인간' 등 다양한 감각을 지닌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올해 쏟아져 나왔다.

스물다섯 살 김애란은 단편소설 '달려라, 아비'로 제38회 한국일보문학상을 수상해 파란을 일으켰다. 수상자 선정 당시 김애란은 아직 첫 소설집도 내지 않은 무명 신인이었다. 이처럼 1980년대 출생 작가의 화려한 등장은 문단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시부문은 전통적 서정성이 여전히 강세였다. 최근 서정시의 주류시인으로 떠오른 문태준이 '누가 울고 간다'로 미당문학상을 수상했고, 강화도에 사는 함민복은 10년만에 낸 시집 '말랑말랑한 힘'으로 박용래문학상과 김수영문학상을 잇따라 수상했다.

1990년대 이후 젊은 시인의 선두에서 시의 서정성을 주도해온 장석남은 다섯 번째 시집 '미소는, 어디로 가시려는가'를 내놓았고, 1990년 이후 신춘문예 출신 최고 시인으로 뽑힌 바 있는 박형준은 네 번째 시집 '춤'을 펴냈다. 이들의 문학적 스승인 중진시인 오규원은 '날(生) 이미지'라는 시의 미학을 응축한 시집 '새와 나무와 새똥 그리고 돌멩이'와 산문집 '날이미지와 시'를 올해 발표해 주목받았다.

원로시인 김규동은 14년만에 신작시집 '느릅나무에게', 성찬경은 실험성 짙은 시집 '논 위를 달리는 두 대의 그림자 버스', 송수권은 '언 땅에 조선매화한 그루 심고', 조정권은 11년만에 신작시집 '떠도는 몸들', 정양은 올해 백석문학상 수상시집 '길을 잃고 싶을 때가 많았다', 박남철은 8년만에 여섯 번째 시집 '바다 속의 흰머리뫼', 박경원은 등단 30년만에 첫 시집 '아직은 나도 모른다'를 냈다.

김기택의 '소', 허수경의 '청동의 시간 감자의 시간', 정끝별의 '삼천갑자 복사빛', 이은봉의 '길은 당나귀를 타고', 정일근의 '오른손잡이의 슬픔', 최영미의 '돼지들에게', 이윤학의 '그림자를 마신다' 등도 올해 출간됐다.

▲한국문학살리기에 복권기금 52억원 투입 = 올해는 침체된 문학을 살리기 위한 정책 지원에 힘입어 많은 문인과 문학출판사들이 재정적 혜택을 받았다. 문화예술위원회(옛 문예진흥원)가 복권기금 52억2천만원을 확보해 문학회생프로그램을 가동, 우수문학도서 구입과 배포에 42억원, 문예지게재 우수작품 원고료 지원에 3억2천만원, 우수문예지 구입과 배포에 6억원을 지원했다.

고은 시인이 올해 노벨문학상 후보로 외신에 강력하게 거론되면서 기대감을 모았으나 수상자는 영국의 극작가 헤럴드 핀터에게 돌아갔다.

올해는 '현대문학' 창간 50주년, 문학과지성사 창사 30주년을 맞는 해였다. 계간 '동서문학'은 35년만에 올해초 종간을 선언했다. 국가보안법위반혐의로 고발됐던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이 5월31일 검찰로부터 무혐의 결정을 받았고,원로시인 이형기, 소설가 전병순, 수필가 조경희 씨가 올해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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