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열정 30년 '문지' 인문주의 산실

2005. 11. 30.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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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참여적 아카데미즘, 문학 중심의 인문주의로 우리나라 문학사와 지성사를 주도해 온 문학과지성사(문지)가 오는 12일 창립 30주년을 맞는다. 아울러 문학과지성사가 발간하는 계간지 '문학과사회'는 전신인 계간 '문학과지성' 시절부터 따져 올해 창간 35년이 됐다. 문학과지성 5+30년. 그것은 한 출판사의 역사를 넘어서 우리 현대 지성사회가 그려온 세월의 흔적이자 현대문학사의 중요한 기록으로 남았다. 문학과지성사가 9일 창립 기념식에 앞서 단행본으로 낸 '문학과지성사 30년: 1975-2005'를 통해 문지 30년의 현대사적 의미를 돌아본다.

◇문지, 창간시절=1970년 계간지 문학과지성의 창간을 이끌어낸 것은 참혹한 시대현실이었다. 4·19 혁명이 일어난 지 10년이 흘렀지만 사회는 자유나 민주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그 반대의 길을 걷고 있었다. 문지 창간 동인 4인방 중 한사람인 김치수씨는 당시 상황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사회는 끝없는 불화와 갈등, 억압과 저항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진정한 문학은 존재할 수 있는가' 우리는 질문을 던지며 괴로워했다."

문지 동인들이 이렇게 무력감에 빠져있을 때 이들을 추스르고 나선 것은 문학평론가 김현. 그는 "이런 시대일수록 현실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문학이 이념의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 존재의 비극적 운명과 그 한계를 극복하고자하는 정신의 고통스러운 표현이어야 한다는 것을 지지하는 계간지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침내 1970년 9월 문학과지성 창간호가 탄생한다. 김현, 김치수, 김병익, 김주연씨 등 '4김'이 동인으로 참여하고 인권변호사 황인철씨가 편집인을 맡았다.

문학과지성사는 5년 뒤인 1975년 12월12일 동인들이 갹출한 총 1천만원의 자본을 바탕으로 출범했다.

◇계간지 강제 폐간과 제2창간=창간 이후 문학과 사회, 사회과학의 관계를 중시하며 우리 사회 지성의 목소리를 담아내던 문학과지성은 1980년 강제 폐간된다. 광주민주화 운동을 총칼로 짓밟은 신군부는 지식인들의 저항을 뿌리뽑으려는 듯 '창작과비평' '뿌리깊은 나무' '문학과지성'을 한꺼번에 등록 취소해버렸다. 그러나 출판사는 그대로 명맥을 유지했다.

문지의 인문주의 정신을 이으면서도 변화한 시대정신을 새롭게 반영한 계간지 '문학과 사회'가 창간된 것은 88년 2월이다. 80년대 계간지 암흑기에 비정기 간행물(무크지) '우리세대의 문학' 동인으로 활동하던 권오룡, 성민엽, 정과리, 진형준, 홍정선, 임우기씨가 창간 멤버였다. 일명 '문지 2세대'의 등장이었다.

문학과 사회의 편집 방향은 88올림픽을 치르고, 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92년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급격한 변화를 겪는다. "정치적 억압이나 경제적 착취는 더이상 현안이 아니기라도 하다는 듯 논의 무대 뒤로 물러나고, 후기 산업사회, 대중사회, 소비사회, 정보화사회, 세계화 등의 각종 현상들이 새로운 문제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문학계에는 이른바 신세대 문학의 등장과 문학 자체의 쇠퇴, 시테크놀러지로지 예술양식을 중심으로 한 대중문화 대두 등의 문제가 등장했다."(성민엽)

'문지2세대'는 50호가 되는 2000년 여름호를 마지막으로 다시 김동식, 김태환, 박혜경, 우찬제, 이광호, 최성실씨 등 후배 비평가들에게 편집권을 넘겨주면서 또 한차례의 혁신을 단행했다.

문지 창간 및 창사의 주역인 김현씨와 재정적 후견인이던 황인철 변호사는 90년대 들어 각각 세상을 떠났다. 이후 문학과지성사는 93년 주식회사 체제로 바꾸고 2000년 채호기 사장이 취임하면서 완전한 '차세대로의 계승'을 이뤘다.

◇문지, 그늘과 과제=계간 문학과지성, 문학과사회는 동인들이 매주 만나 편집 방향을 논의하고 각자 주인 의식을 가지고 필자 선정, 원고 청탁을 하는 초기의 동인체제를 30여년간 불문율처럼 지켜왔다. 이러한 동인체제는 내부 결속력을 확고히 했지만 밖으로부터 '폐쇄적 엘리트 주의'라는 비난을 샀고, 지금까지 문지를 이러한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했다.

다매체, 인터넷 환경과 정치적 현실 변화로 인문주의 중심의 계간지가 그 필요성에도 불구, 점차 입지가 좁아지는 점도 장기적 극복과제다. 문학출판 부분 역시 출판환경의 무한경쟁 시대를 맞아 '문지'만의 특색과 권위가 다소 퇴색한 데다 문학의 위기 상황까지 겹쳐 돌파구가 필요해 보인다.

〈이상주기자 sj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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