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영이별 영이별' 비운의 단종妃, 찡하여라 '불멸의 사랑'

2005. 11. 29.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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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근갈근 목젖에서 하고픈 말이 끓어요. 꿍꿍 욱박아 두었던 말들이 배꼽노리로부터 불덩이처럼 치받아 올라요. 이제는 할 수 있을 거예요. 하고야 말 겁니다. 당신께 당신 없이 살아 낸 그악한 세월을 다 이야기하고 싶어요." 노파가 하소연한다. 후줄근한 한복 아래, 호호할미의 야윈 어깨가 애처롭다.

그 여자, 윤석화는 객석을 일종의 의식 교란 상태로 몰고 간다. 꽃다운 15세에 단종의 비가 되고 나서 왕위 찬탈 등 온갖 세파를 가까스로 견뎌낸 82세 할미를 연기하는 그 몸짓과 말투는 극중 인물 정순황후에 완전히 복속된다. 같은 이치로, 관객에게 코앞에서 펼쳐지는 비통한 순간 순간은 극이 아니라 현실이 된다.

통한에 감염돼, 극중 인물과 배우를 분간 못 하는 착시 현상에 빠진 객석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염치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는 정도가 고작이다.

극단 산울림의 '영영이별 영이별'은 비운의 남편 단종을 보내고도 이후 왕이 다섯 명 바뀔 때까지 모진 목숨을 부지해 나간 정순황후의 일대기를 모노드라마로 만든 작품이다. 이미 몇몇 모노드라마에서 객석의 사랑을 확인한 윤석화이지만, 이번 것은 확연히 다르다. '목소리', '딸에게 보내는 편지' 등 앞서의 모노드라마에서 그는 욕망하는, 성숙한 현대 서양 여인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모진 운명에 허청대는, 그럼에도 결국 운명을 초극해 내는 한국 여인이다. 일부함원(一婦含怨)의 현장과 일부종사(一夫從事)의 이데올로기를 피비린내 나는 왕실비사 속에 배치한 이 작품의 설득력은 배우의 연기에 의존한다.

무대에서 인상적인 것은 시청각적 장치다. 머리 장식만 3㎏ 나가는 왕비 대례복은 약과다. "달 밝은 밤에 자규새 울면…." 정순황후가 시름을 달래기 위해 읊는 시조창, 물기 빠진 몸짓으로 추는 살풀이 등 전통 예능은 이아미 등 젊은 국악인들로부터 달포 동안 전수 받은 결과다. 왕비의 궁중 대례복인 활옷과 한지의 이미지를 근간으로 한 배경 장치가 무대에 녹아든다.

이 연극은 잘 알려진 단종애사의 페미니즘 버전이다. 그 비장함, 그 고풍스러움을 1인극으로 되살려 낸 작업의 맨 앞에는 김별아가 쓴 같은 제목의 소설이 있다.

연극은 복원된 청계천에 바쳐지는 무대이기도 하다. 청계천 다리 복원을 기념하기 위해 서울시가 벌인 공모전에 나온 소설이 원작이다. 청계천 복원 사업으로 갓 되살아 난 영도교(永渡橋)가 바로 17세 소년(단종)과 18세 소녀(정순황후)가 작별한 곳이다. 2006년 2월19일까지 산울림소극장. 수ㆍ금 오후 3시 7시30분, 목 7시30분, 토 3시 6시, 일 3시.(02)334-5915

장병욱 기자 aj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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