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진]'각본없는 드라마' 감동의 야구 영화들

2005. 11. 29.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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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지금의 20대를 이루고 있는 우리 세대는 프로야구를 통해 꿈을 키운 사실상 마지막 세대라고 봐도 무방한 것 같다. 우리의 어린 시절은 프로야구의 진정한 중흥기였다. 우리는 장종훈 선수의 41호 홈런을 목격했으며, 박충식 선수의 15이닝 완투도 눈으로 봐왔다.

물론 지금이야 시즌 56호 홈런 달성과 함께 일본 프로야구로 진출한 이승엽 선수가 최고의 스타로 통하지만, 프로야구에서 그만큼 많은 스타들이 즐비했던 때는 그 이후로는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도 많았던 그 당시의 선수들은 대부분 선수 생활의 황혼기를 맞이하며, 은퇴를 했거나 은퇴를 준비하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장종훈 선수도 이미 코치로 자리잡았으며, 송진우 선수만이 마흔의 나이를 무색하게 만들며, 지금도 녹슬지 않은 실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러다가 우리는 박찬호 선수를 통해 미국의 메이저리그 야구를 접하기 시작했다. 사실상 우리 세대는 박찬호 선수를 통해 메이저리그에 대해 본격적으로 흥미를 느낀 마니아들이 다수 출현한 첫 세대라고 봐도 옳은 것 같다. 물론 우리 프로야구에서도 그렇듯 많은 스타플레이어들이 있었지만, 10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메이저리그는 그 세월의 무게만큼이나 많은 선수들이 있었고, 우리는 그들의 홈런과 삼진에 감탄하며, 그들의 선행에 감탄해왔다.

모든 스포츠가 다 그렇지만, 야구야말로 진정한 '각본없는 드라마'라는 말이 통한다는 것은 그런 그들이 늘 이변과 감동을 만들어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영화는 야구의 그런 인기를 반영하며, 많은 야구 영화를 만들어왔다. 야구에 대한 흥미를 사실 그런 영화들을 통해 더 많이 느껴온 우리들이다.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우리를 감동시켰던 야구영화들을 돌아보며, 그때의 감동을 다시 한번 되새겨보는 것도 짧으나마 좋은 시간이 될 것이라고 본다. 마침 우리는 최향남 선수가 나이를 극복하며,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또다른 도전을 위해 땀을 흘리고 있다는 감동적인 소식도 접하고 있으니 말이다.

<외야의 천사들>과 더불어 1990년대 초반의 가장 대표적인 야구영화다. 우리 영화 <공포의 외인구단>처럼 온갖 사고뭉치나 도태된 선수들을 모두 불러모아 시작하는 이 영화는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드라마'로 만들기 위한 준비를 모두 끝냈다고 볼 수 있다. 그런 그들이 드디어 '팀'을 이루며, '월드시리즈 챔피언'이라는 목표를 향해 마음의 변화를 느끼고, 팀 플레이를 만들어가는 과정은 우리에게 감동을 주기 충분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야구도 다른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팀 플레이다. 현대 메이저리그의 뉴욕 양키스처럼 천정부지의 몸값을 자랑하는 최고의 선수들을 잔뜩 끌어모든다고 다 챔피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런 팀은 제대로 된 팀 플레이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이변의 희생양'이 되기 십상이다.<메이저리그>는 9회말 2아웃 상황에서 터진 극적인 만루홈런으로 승리를 기록한다는 상투적인 결말보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최선을 다하는 선수를 집중하는데 더 많은 노력을 할애했던 결말을 선택했던 것이 특히 인상적이다. 특히 지금이야 스타배우로 거듭났다지만, 그 당시에는 무명이었던 웨슬리 스나입스를 보는 재미도 생각보다 쏠쏠하고, 웬일인지 사실상 활동을 멈춘 찰리 쉰의 전성기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도 나름대로 향수가 될 수 있을 듯하다.

개인적으로는 박찬호 선수의 메이저리그 통산 100승 달성과 함께 떠올린 영화다. 이 영화는 야구광으로 소문난 케빈 코스트너의 세번째 야구 영화이기도 하다. 케빈 코스트너가 연기하는 '빌리 체플'은 오직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서만 활약하며, 우승도 경험했던 최고의 투수였다. 하지만 어느덧 그는 선수 생활을 지속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느껴질 정도로 고령의 선수가 되었으며, 투수에게는 치명적인 부상으로 볼 수 있는 팔꿈치 부상의 후유증도 만만치 않다. 최고의 선수 생활을 보냈던 고령의 선수인만큼 그의 연봉은 높을 수 밖에 없었는데, 구단주는 그렇기 때문에 그의 트레이드에 혈안이 되어 있다. 게다가 그의 연인마저도 그의 야구 사랑이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떠나려는 상황.

<사랑을 위하여>는 이렇듯 성공한 이가 겪는 일상적인 비애를 담담한 심정으로 화면에 담았다는 것이 일품이다. 화려한 성공만이 있어왔던 최고의 선수로서는 운동을 하기 힘에 부친 나이에 접어들어 겪게 되는 이런 비애들이 더욱 서글플 수 밖에 없다. 우리의 송진우 선수나 메이저리그의 로저 클레멘스나 랜디 존슨에게 많은 팬들이 열광하는 이유도 그들이 고령이라는 어쩔 수 없는 한계를 이겨내며, 불꽃같은 투지와 최고의 실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사랑을 위하여>는 한편으로 할리우드식 드라마의 전형적인 결말을 선택했다는 이유로 평론가들의 혹평에서 벗어나지는 못했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가 기억에 남는다. 주인공의 위기와 변화가 현실적이고, 사실적이라면 유치해보이는 전형적인 결말은 오히려 감동이 된다. 은퇴의 기로에 선 노장들에게 바치는 멋진 야구 영화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미국의 마이너리그나 한국의 2군에는 많은 선수들이 '최고'라는 꿈을 위해 땀을 흘리고 있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성공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어떤 선수는 실력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쓸쓸히 은퇴하는가 하면, 어떤 선수는 본의아니게 맞이한 치명적인 부상으로 그라운드에서 떠나게 된다. 우리가 최고의 선수들에게 열광을 보내는 사이에 그렇듯 쓸쓸히 야구를 접은 선수들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을 것이다.

'짐 모리스'라는 이름은 지금도 많은 팬들에게 감동을 전해주는 이름으로 통한다. 심각한 부상으로 메이저리거의 꿈은 접었지만, 자신이 코치로 있는 고등학교의 제자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꿈을 위해 나이를 극복한 그의 이야기는 스포츠가 줄 수 있는 최고의 감동이라고 해도 손색없다.

영화 <루키>는 그런 '짐 모리스'의 일대기를 담담하게 필름에 담으며, 관객에게 뜨거운 감동을 선사한다.이 뜨거운 감동은 마침 우리의 최향남 선수가 주변의 냉소와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집을 꺾지 않은 끝에 마이너 계약으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 입단했다는 소식 덕분에 더욱 깊게 와닿을 것이다. '안될 것'이라는 이유로 반대로 일관했던 많은 야구팬들도 그의 계약이 이루어지자, 그에게 존경어린 찬사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크게 알려지지 않았지만, 짐 모리스처럼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접고, 고등학교에서 코치로 있다가 현역으로 복귀해 투지를 발휘하며, 플레잉 코치로서 올스타전까지 출전한 지연규 선수를 떠올리며, 이 영화를 보게 된다면 그 감동은 더 크게 다가올 것이다. 사실 야구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꿈이 있다면 그것을 증명해보이는 것, 그것은 우리가 세상을 사는 이유이기도 하다.

야구 영화라고 꼭 할리우드의 영화만 있는 것은 아니다. 그에 못지 않은 감동을 선사한 우리의 야구 영화도 있다. 바로 <슈퍼스타 감사용>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는 언제나 최고의 선수들만 기억해왔다. 하지만 세상 어딜 가나 1등만 있는 법은 아니다. 1등 못지 않게 많은 열정과 노력을 아끼지 않은 '아름다운 꼴찌'의 이야기도 그에 못지 않은 감동을 준다. 감사용은 화려한 선수생활을 보낸 선수는 아니지만, 바로 '아름다운 꼴찌'였기 때문에 더 큰 감동을 준다.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은 그런 그의 이야기를 화면에 담았다. 원래 그는 삼미특수강의 직원일 뿐, 정식 야구선수는 아니었지만, 우연히 삼미 슈퍼스타즈의 훈련장으로 향했다가 그저 '왼손'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입단하게 된다. 야구에 대한 열정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그였지만, 현격한 실력 차이는 어쩔 수 없는 법. 결국 그는 패전 처리 전문 투수로만 활동하게 된다. 오죽하면 그가 등판하면 상대팀이 감사해할 정도다.

하지만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기회는 오는 것이 인생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어느날 다시는 오지 않을 것만 같은 기회를 잡으면서 감사용은 야구 인생에 있어 새로운 계기가 될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슈퍼 스타 감사용>은 '보통 사람'의 얼굴을 소유한 이범수를 앞세우며, 보통의 따뜻한 가정의 이야기와 풋풋한 사랑의 이야기 등, 주변부 요소도 주된 이야기 못지 않게 재미있고 생생하게 담았다는 것이 매력적이다. 게다가 영화에서 보여주는 박철순, 김성한 등 당대 최고의 선수들의 이름과 그 시절의 유니폼 역시 프로야구 초창기 시절, 열렬하게 성원을 보냈던 올드팬들에게도 모처럼 향수에 젖기 좋은 소재로 보인다.

이 영화 역시 <메이저리그>처럼 전형적인 결말을 선택한 영화는 아니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남기는 여운과 감동은 더 크게 다가온다. 인생이란 결과만이 다는 아니다.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최선을 다한 과정이라면, 비록 꼴찌라고 하더라도 그는 '아름다운 꼴찌'가 되어 그 자체만으로 성공한 삶이라고 볼 수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1등이든, 꼴찌든 최선을 다한다는 것이다.

야구 영화여, 영원하라!

이렇듯 스포츠는 우리가 살면서 맞이하게 보고 듣게 되는 다양한 이야기를 모두 담고 있기 때문에 '각본없는 드라마'라는 말이 통한다. 그리고 그 간접적인 인생 경험이야말로 팬들이 스포츠에 열광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그 중에서도 야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기가 많았던 스포츠 중의 하나였기 때문에 더 애틋하게 다가온다. 그런 의미에서 지금 다소간의 문제가 있고, 이런저런 이슈로 화제가 되고 있는 야구이지만, 앞으로도 야구가 전해주는 드라마가 영원하길 기대해본다. 지금도 많은 팬들은 그 '각본없는 드라마'가 끊임없이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야구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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