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커스에 놀러와요, 폭죽을 터트려요

2005. 11. 8.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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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항구도시 요코하마의 현대미술제 '2005 요코하마 트리엔날레'

아시아의 일상적 사물들이 유쾌한 아트 오브제로 바뀐다

▣ 오현미/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사·for-makia@hanmail.net

일상에 대한 예술의 기능은 무엇이며 예술의 힘은 어떻게 나타날까. 이 질문은 다카하시 가와마타가 '2005 요코하마 트리엔날레' 예술 총감독직을 제의받았을 때 그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것은 많은 사람들이 난해한 현대미술을 대하면서 자연스레 갖는 질문이기도 하다. 심지어 비엔날레류 같은 거대한 현대미술제는 관람객들에겐 너무나 어렵게 보이는 게 사실이다. 때론 그렇게 난해한 우리 시대 미술을 보아야 하는가라는 극단적인 의문를 품을 만도 하다. 그렇다면 여전히 비엔날레류에 속하는 이번 요코하마 트리엔날레는 이러한 질문들에 어떻게 답하고 있는가? 예술가의 일방적인 모놀로그로 끝나기 십상인 현대미술제의 난점과 도전을 요코하마 트리엔날레는 어떻게 극복하고 있는가.

원을 그린 컨테이너들의 환영 인사

지난 2001년 처음으로 관객을 부른 요코하마 트리엔날레는 이제 막 새싹을 틔우는 현대미술제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트리엔날레가 3년이라는 의미이지만 총감독 선임 문제로 한 해가 늦춰져 두 번째 트리엔날레가 올해에야 열렸다. 항구도시인 요코하마는 우리나라로 치면 인천 정도의 위치에 있으며 깔끔하게 정돈된 일종의 계획도시다. 이 요코하마에서 트리엔날레가 열리는 곳은 많은 선박들이 오고 가는 하마시타항 안쪽에 있는 두 개의 커다란 창고다. 전시장으로 들어가기 전 관람권을 사는 곳에서부터 일상과는 다른 심상찮은 풍경이 펼쳐지기 시작한다.

우선 서커스를 하듯 거대한 컨테이너들이 하늘로 원을 그리며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이 작품은 뤽 드루(벨기에)의 설치작품이다. 그는 자신의 독특한 예술적 감성을 통해 우리에게 친숙한 사물을 그 쓰임새에서 뜯어내어 즐거운 충격을 주는 예술작품으로 변신시키는 작업을 한다. 요코하마 트리엔날레에서 처음 만나는 이 작품에서부터 요코하마 트리엔날레의 '아트 서커스- 일상으로부터의 도약'이라는 주제가 구체적으로 다가온다. 우리의 일상에 존재하는 컨테이너는 단지 물류의 이동을 위한 육중한 철제 박스일 뿐이지만 예술가들의 손에서 유쾌한 아트 오브제로 변신하는 것이다.

다니엘 뷔렝(프랑스)의 빨간 스트라이프 깃발들이 바람과 함께 펼치는 환영 퍼포먼스를 받으며 전시장으로 난 길을 따라 걸어가자 커다란 창고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창고 안으로 들어가자 여기저기를 기웃거리며 다니는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의 표정에는 호기심과 즐거움이 가득 들어 있었으며, 곳곳에 서 있는 작품에 붙어서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창고 내부의 넓은 공간은 많은 작품들로 어지러이 채워져 있는 듯했지만 자유로이 배회하면서 곳곳에서 예기치 않게 작품들과 마주치도록 구성돼 있었다.

유독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아트 오브제로 게임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마치 무도장과 같은 구성으로 커다란 캐리커처 입체상들을 곳곳에 설치한 타이 출신의 큐레이터맨 회사(타이 ⓒuratorman Inc.)의 <슈퍼(마)아트>(SUPUR(M)ART)에서는 사람들이 테이블에 앉아 카드게임을 하면서 기괴하고 마술적인 분위기를 즐기고 있었으며, 일본 아방가르드 그룹인 구타이 그룹에서 활동했던 사다하루 호리오와 사이트 아트 스쿼드의 설치작품에서는 벤딩머신에서 커피를 뽑듯이 100엔(약 1천원)으로 작가에게서 그림을 사고 있었다. 코우마(일본 COUMA)가 설치한 탁구대들도 일반적인 생김새의 탁구대가 아니다. 작은 정원 위나 1인용 침대 위에 탁구대를 얹어놓아서 탁구대의 개념을 확장하고 그 개념의 탁구대를 다시 사람들에게 돌려주어 그 위에서 탁구를 치며 놀게 한다. 이러한 과정 자체가 작품이 된다.

다 같이 팡! 일상에서 도약하라

가오리 다조에(일본)가 설치한 캄캄한 사각 공간 안으로 들어가면 조그만 등이 빨간 버튼을 비추고 있다. 관람객들이 호기심에 이끌려 자연스레 단추를 누르면 깜작 놀랄 만큼 갑작스레 밝은 체조장이 유리창 너머로 나타난다. 이는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과 같은 두근거림처럼 그 장소에 무엇이 있는지 예기치 못한 순간 무언가 존재하고 있는 체험을 제공한다. 또 볼프강 윈터와 베르톨드 페어벨트(독일)의 설치작품인 '스윙거클럽'(Swingerclub)도 인터렉티브한 측면을 부각한 작품으로 어두운 공간에 조그만 전등들이 알알이 박힌 그네와 붉은 빛이 들어오는 타이어 형태의 전등 타워를 세워 관람객들이 그네를 타면서 환상적인 그네타기를 체험할 수 있게 했다.

갑자기 터지는 폭죽 소리에 놀란 관람객들이 창고를 빠져나오면 1번 창고와 2번 창고 사이에 있는 마당에서 벌어지는 폭죽놀이를 목격할 수 있다. 보통 폭죽놀이는 단체에서 일반 시민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해주기 위해 여는 것이 보통이다. 이때 사람들은 수동적인 관망자가 되기 일쑤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렇지 않다. 작가가 무작위로 관람객들에게 작은 콩알탄과 폭죽을 나눠주고 작가의 지시에 따라 일제히 나눠받은 폭죽을 터트리도록 하는 퍼포먼스가 일어난다.

작가와 관람객 그리고 폭죽 터트리기에 참여하는 관람객들까지 주의 깊게 작가의 손을 주목하면서 작가의 신호에 맞춰 일제히 폭죽을 터트리고 즐거워한다. 그 순간만큼은 폭죽놀이가 제공받은 즐거운 구경거리가 아니라 같이 만들고 즐기는 작품이 된다. 일순 팡! 하고 터지는 폭죽 소리가 남아 있는 시간만큼 우리 모두는 일상에서 도약했다. 이러한 관람객들의 자연스럽고 적극적인 개입을 이끌어내는 작품들을 통해 요코하마 트리엔날레는 비로소 작가의 쓸쓸한 독백에서 작품과 관람객들이 함께 나누는 유쾌한 대화의 장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하고 있었다.

올해 요코하마 트리엔날레에서는 아시아의 일상을 구성하는 사물들이 그들의 친숙한 쓰임새에서 벗어나 유쾌함을 제공하는 아트 오브제로 변신한 작품들과 하마시타항에 있는 전시장에 맞는 '장소-특정적'(site-specific) 설치작품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특히 전시장 안에서는 완결된 형태의 작품이 아니라 계속 진행 중인 작품과 관람객들에 의해 비로소 완성되는 작품들이 주를 이루었다. 이러한 경향의 작품들이 많이 선택됐다는 것은 일상에 개입하는 예술의 기능과 그 가능성에 대한 실험으로 보이며, 이러한 시도는 즐거운 성공을 이룬 듯했다.

아시아 예술, 성찰의 속도를 가지다

전시에서 풍기는 정치적 의미는 희미하다. 하지만 아시아의 한 구성원으로서 바라보는 이번 트리엔날레는 다른 의미로도 다가온다. 선진 자본주의 체제로 접어들려는 아시아의 예술은 급속한 고도 성장과 빠른 개발에서 물러서고 싶어한다. 아시아의 일상은 따라잡아야 하는 서방 세계가 앞에 존재하기에 여전히 바쁘고 빠르다. 하지만 아시아의 예술은 이미 이러한 개발 속도에서 비껴서기 시작했다. 그것을 요코하마에서 확인했다. 아시아의 필요, 그것은 일상의 속도와 다른 성찰의 속도이며 예술은 이것과 만나고 있다. 이에 대한 확인은 지금도 늦지 않았다. 12월18일까지 요코하마는 당신을 기다린다. 브라보, 아시아! 지친 어깨에 예술을!

과학과 예술의 중매를 서라

미디어 아트 강국의 가능성을 보여준 대전의 두 전시회▣ 대전=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예술의 진화는 어떻게 이뤄질 것인가. 그것이 궁금하다면 첨단과학의 흐름을 살펴야 한다. 과학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공상과학을 현실로 끌어들이는 데 그치지 않고 현실과 가상의 구분마저 모호하게 만들었다. 첨단 전자장비로 빗어내는 가상현실이 실재보다 더욱 리얼한 꿈과 환상의 세계를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원본은 없고 현실의 모사나 이미지가 지배하는 형국이 된 셈이다. 여기에서 예술은 혼성문화적 성격의 하이브리드 양식으로 영역을 넓혀가게 마련이다.이런 테크놀로지에 바탕한 새로운 예술이 '미디어 아트'라는 장르로 대중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온 게 30여 년 전의 일이다. '2005 대전 FAST'(Future of Art, Science and Technology)의 주요 행사로 오는 12월18일까지 대전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디지털 파라다이스'전은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미술작가의 도구와 영역이 확대되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게다가 미술의 매체가 단순한 재료에 머물지 않고 관객과 작가의 소통을 가능케 한다는 사실을 직접 체험할 수도 있다.'디지털 파라다이스'전에 선보인 작품들은 대부분 관객을 '보는 이'의 자리에 고정시키지 않는다. 관객의 반응을 감지하는 것을 모티브로 삼거나 직접적인 소통으로 작품을 완성하기도 한다. 소리의 양감과 질감에 따라 사람의 입체적인 두상이 다양한 표정으로 움직이고(김기철), 관객이 있어야만 그림자 놀이를 통해 작품 구실을 하고(한나 하슬라티), 보이지 않는 관객을 소리로 불러모아 음향 생태계를 이뤄내기도(존 매코맥) 한다. 이런 작품은 소통의 도구로 인공 센서를 부착하고 있다.대부분의 미디어 아트는 과학과 예술의 만남을 추구한다. 하지만 국내 작가의 작품에서 테크놀로지의 위력이나 변신을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과학자와 예술가의 만남이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는 탓이다. 국내 작가들은 예술적 상상력에 바탕해 홀로 작업하는 반면, 미디어 아트의 특성을 극대화하려는 모색으로 건축과 컴퓨터, 음향기사 등이 만나 함께 창작한 작품을 선보인다. 미술 작가가 아이디어를 내면 테크놀로지 지원팀이 작품 제작을 거드는 방식으로 예술의 폭을 넓히는 것이다. 컴퓨터 공학자가 작품을 선보이는 경우도 흔하다.만일 과학을 만나 새롭게 변신하는 국내 작품을 만나고 싶다면 11월20일까지 대전 국립중앙과학관 특별전시관에서 열리는 '로봇과 예술의 만남'전으로 발길을 옮겨보자. 로봇이 인간과 함께 살아나갈 미래를 예고하는 이 전시에서는 테크놀로지가 미술 작품을 진화시키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예컨대 평면 작업을 하는 낸시 랭의 작품 '터부 요기니 시리즈'를 한국과학기술원 전산과학과 윤준보 박사팀이 3차원 작품으로 재탄생시키는 식이다. 미술 작품을 통해 로봇이 예술적으로 거듭나는 셈이다.요즘 우리나라는 미디어 아트 강국으로 떠오르고 있다. 올해로 네 번째 '대전 FAST'가 열리고 전국에서 크고 작은 미디어 아트전이 끊이지 않는다. 그만큼 작가군이 형성된 까닭이다. 문제는 적절한 지원대책이 세워지지 않는다는 데 있다. 더욱이 과학기술을 예술 도구로 삼는 '테크놀로지 아트'에서는 세계적 흐름에 좇아가지 못하는 추세다. 이러다가 과학과 예술의 만남이 '허망한' 바람에 그치고 말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지금이라도 정책적으로 과학과 예술의 만남을 주선해야 할 것이다. 김기철: 소리와 대화하기소리의 흔적은 오디오 테이프나 콤팩트디스크에 남지만 보여주지는 못한다. 작가는 소리에 반응하는 인체 두상을 만들어 보여주는 소리에 다가선다. 작가는 전자회로와 발생음원 원리 등의 기초지식을 습득한 뒤 미국 유학을 떠나 전문성을 다지고 있다. 존 매코맥(오스트레일리아): 에덴소리에 반응하는 일종의 디지털 생태계. 컴퓨터 공학자인 작가는 음향에 반응해 상호작용하는 자기진화 모델을 만들었다. 스크린에서 작은 원 형태의 세포가 끊임없이 자기분열을 하면서 생태계를 만든다. 관람객이 들어서면 차츰 세포가 줄어들게 된다. 미구엘 슈발리에(프랑스): 울트라-네이처대형 스크린에 펼쳐진 자연의 느낌을 실감나게 체험할 수 있다. 천연의 색감을 간직한 식물체들이 관객의 움직임에 따라 물결을 이뤄 춤을 춘다. 마치 절정의 단풍 앞에 선 듯하다. 관객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센서의 주문대로 스크린의 영상이 바뀐다. 노진아: 나는 오믈렛입니다사이보그를 소재로 인터랙티브 기반의 작업을 했다. 눈을 뜨고 태어난 사이보그가 인간이 되려는 환상을 품고 있다. 꿈을 꾸던 사이보그가 관객이 앞에 서면 정면으로 응시한다. 관객이 다음 방으로 이동하면 사이보그의 자아가 되어 이전 방의 관객과 대화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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