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철스님은 ''돈오돈수''만 인정 ''돈오점수''는 배격"

2005. 10. 12.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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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 스님은 오직 '돈오점수(頓悟漸修)'라는 한 이단만을 일관되게 공격했습니다."

프랑스 출신의 예수회 신부 서명원(52·서강대 종교학과·본명 베르나르도 스니칼) 교수가 해석이 까다롭다는 성철(1912∼93) 스님의 법어집 '선문정로(禪門正路)'를 강해(講解)해 화제가 되고 있다.

외국 학자가 성철 스님 법어집을 정식 논문 주제로 다루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서 교수는 이 논문('선문정로의 전통 인식')을 12일 부산 중구 고심정사에서 열린 '성철 스님 열반 12주기 추모 학술회의'에서 발표했다.

서 교수는 이날 발표에서 "성철 스님은 선(禪) 수행의 바른 길은 간화선 수행을 통한 돈오돈수(頓悟頓修), 즉 단박에 깨쳐서 단박에 수행에 이르는 길밖에 없다는 사실을 '선문정로'에서 선명히 드러냈다"며 "이 때문에 점진적으로 깨쳐 수행에 이른다는 돈오점수는 늘 비판의 대상이 됐다"고 말했다.

1984년 한국지구에 파견됐던 서 교수는 이미 성철 스님 연구로 파리 7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인물. 그는 그러나 "'선문정로'는 물론이고 상좌들이 쓴 '선문정로 평역'도 읽기가 수월치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논문에서 성철 스님의 언어관, 선문정로의 구조와 구성성분, 성철 스님의 인용 방법, 선문정로와 육조혜능, 성철 스님의 극단성 등을 조목조목 진단했다.

"성철 스님은 생전에 말을 했다가 바로 부인하는 언어관 때문에 '자가당착에 빠졌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는 그는 "큰 스님은 언어는 달을 보여주는 손가락에 불과하다고 강조하면서도, 그렇다고 그 손가락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하려 했던 것"이라고 설명하고, "성철 스님은 자신을 지극히 낮춤으로써 자신의 말에 걸리지 않기를 간절히 염원했다"고 밝혔다.

그는 "선문정로는 인용문으로 구성된 모자이크"라며 돈오점수를 반박하고 돈오돈수를 원상으로 복귀시키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 목적 때문에 구조 전체는 하나의 대립각을 드러내고 있고,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형식은 성철 스님의 페다고지(교육법)의 중요한 요소라고 덧붙였다.

"성철 스님은 '선문정로'에서 인용방식을 택했지요. 그 중에서 59%가 선종의 어록이었습니다." 서 교수는 그 연유에 대해 "옛 조사들의 말씀을 반복하는 데 있지 않고, 깨달음을 얻으려는 수행자들을 그렇게 되게 격려하는 데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성철 스님은 학자가 아닌 독학한 선(禪)수행자이자 선사였다"며 "큰 스님을 학자로 가두어 두면 큰 오류에 빠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성철 스님은 불교의 가장 핵심적 개념인 깨달음, 무명, 수행에 대한 정의를 하면서 극단적이자 새로운 해석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서 교수는 성철 스님은 자신의 정통성을 '선배(옛 조사)들에 대한 충실함'에서 찾았고, 전통의 해석에 상당한 자신감을 지니고 있었다고 말했다. 성철의 이 같은 자신감이 나머지(돈오점수)는 모두 엉터리로 삼는 극단적 해석이 되었다는 것이다. 성철의 해석학은 더 나아가 이단들로 하여금 그 전통의 궤도 안으로 돌아오도록 강력하게 권고함으로써 전통을 달리 해석할 수 없는 다른 모든 가능성을 배격했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무엇이 성철 스님으로 하여금 그토록 전통에 대한 극단적·배타적 해석을 했을까 하는 의문과 돈점(頓漸) 논쟁에 대한 최종 판단은 한국 불자에게 맡긴다"고 말했다.

조계종 백련불교문화재단(이사장 원택 스님) 주최로 열린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가산불교문화연구원 김영욱 연구원이 성철 스님의 법어집 '본지풍광(本地風光)'을 국내 최초로 역주(譯註)하는 등 그 어느 때보다도 풍성한 수확을 거뒀다.

정성수 기자

hulk@segye.com

◇12일 부산 중구 고심정사에서 성철스님 추모 학술대회가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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