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타워]''참여정부''는 결백한가

2005. 10. 11.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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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규 국정원장이 '국민의 정부에서도 도청이 있었다'고 자기고백을 해 세상을 발칵 뒤집어놓은 지난 8월. 김대중(DJ) 정부에서 고위직을 맡았던 한 인사는 휴대폰이 도청되는 줄 이미 알고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역시 국민의 정부에서 당 대표를 역임했던 다른 인사도 최근 기자에게 "내가 몇 년 전 핸드폰 번호를 왜 바꿨는지 알아? 그 전 번호는 도청이 쉽다고 해서 그렇게 한 것이다"고 말했다.

이름을 대면 대충 알 만한 인사들이니 그저 시중에 떠돌아다닌 얘기를 전한 건 아닐 것이다. 나름대로 믿을 만한 곳에서 얻은 정보일 터이고, 전 정권에서 도청 문제가 불거졌을 때 '모르쇠'로 일관했던 이들이니 그동안 보안유지에도 각별했던 셈이다. 그렇다면 이들에게는 새삼 김은성 전 국정원 2차장이 정치권, 재계, 언론계 인사들을 상대로 도청을 했고 이를 윗선에 보고한 것이 드러났다고 놀랄 일도 아니다.

그러나 그렇게 심상하게 도청 파문을 바라볼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바로 "도청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된다"고 임기 내내 강조해온 DJ다. DJ측은 줄곧 "김 전 대통령은 지금도 도청은 없었다고 믿고 있고, 휴대폰 도청도 안되는 줄 알고 있다"고 말해 왔다. 앞서 언급한 인사들도 "DJ는 (도청을) 몰랐다고 확신한다"고 했다. 가택연금 당시 집안에서도 필담을 나누고 바깥에서도 꽃을 이쪽저쪽으로 옮겨 심으면서 얘기를 할 정도로 도청 피해에 시달렸던 DJ가 도청문제에 결벽증을 갖다시피한 걸 모두 아는데 그런 정보를 알렸을 리 만무하다는 얘기다.

그럴지도 모른다. 그래서 김 원장이 도청 고백을 한 이후 노(老) 대통령이 '노벨평화상까지 받은 사람이 어떻게 …'라며 자괴지심에 식음을 전폐했었는지도 모른다.

그럼 누구의 배신인가? 검찰 수사에서 드러난 대로 실무선에서 도청업무를 진두지휘한 김은성씨인가? 김씨에게 도청을 지시하고 보고를 받은 '윗선' '실세'들인가? 아니면 도청 사실을 직간접적으로 알고도 시치미를 뚝 뗀 다수의 '공범자'들인가?

호남 출신의 김은성은 DJ정부 들어 초고속으로 승진한 대표적인 국정원내 호남 인맥이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뒤에는 든든한 호남 실세들이 있었던 건 물론이다. 국정원에서 잔뼈가 굵은 그는 그의 뒤를 봐준 또는 앞으로 그를 돌봐줄 '후견인'에게 가장 값진 '선물'이 뭔지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역대 정권에서 그의 전임자들이 그래 왔듯이 도청을 통해 갓 잡은 싱싱한 횟감 같은 정보들을 낚아 '진상'하는 것임을. 그가 도청의 명분으로 말한 '통치권'은 기실 권력을 움직이는 정치세력을 뜻한 것이다.

정권에 따라 정보기관 핵심 인맥이 달라진 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2년 정권이 바뀌고 주요 보직은 호남에서 영남 인맥으로 물갈이됐다. 감청과 같은 민감한 부분은 '믿을 만한 사람들'에게 맡길 수밖에 없고 '출신지역'이 그 믿음의 기준이 됐다. 국회 정보위 소속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이 11일 밝힌 자료에 따르면 2000년 DJ정권 당시 주요 간부 중 호남 출신 비율은 35.7%, 2005년 현재 영남 출신 간부는 46.4%를 차지했다. 핵심요직만 따지면 영남 출신이 75%에 달한다. 국정원에서 DJ정부 도청 고백이 나온 이면에는 소위 호남 인맥을 털어내기 위한 영남 출신 직원들의 진술이 결정적이었다는 말이 나올만도 한 수치다.

DJ는 도청에 관한 한 자기만의 '성역'을 만들었으나, 결국 정권 내림으로 이어져 온 특정지역 싹쓸이 인사와 거기서 싹튼 권력 실세와의 음험한 결탁을 막지는 못했다. 알고도 묵인하고 방관했는지는 검찰 수사가 밝혀야 할 몫이다. 그러나 지금 나온 사실만으로도 김 전 대통령은 스스로뿐 아니라 '도청은 없다'는 그의 말을 믿어온 국민들을 배신했다.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자. 정권 초기부터 국정원 국내보고를 받지 않은 노무현 대통령은 정말 도청문제에 결백할까. 통계에 드러난 국정원 영남 인맥의 '독식'은 또 다른 '배신의 그림자'를 연상케 해 개운치가 않다. 황정미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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