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59주년] "살땐 왕성하게, 숨 거둘 땐 한순간에"

2005. 10. 5.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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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을 때는 핀핀(왕성하게), 숨을 거둘 때는 코로리(한순간에).'

일본 도쿄(東京)에서 북쪽으로 137㎞ 떨어진 나가노(長野)현 사쿠(佐久)시 고령자들이 자주 표현하는 이른바 '핀핀 코로리'다.

나가노는 동계올림픽이 상징하듯 해발 1,000m 안팎의 고원지대에 눈이 많고 추운 곳이다. 그러나 이 엄동지역은 요즘 일본 전통의 장수촌인 오키나와를 제치고 최고의 장수지역으로 꼽히고 있다.

5년마다 한번씩 실시하는 일본 국세(국勢)조사(2000년)에서 나가노현 남성의 평균 수명은 78.9세로 1위였다. 여성은 85.31세로 3위다. 오키나와가 여성(86.1세) 부문에서는 1위지만 남성 부문은 톱5에도 포함되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장수 나가노'의 위상을 짐작할 만하다.

사쿠시는 이런 나가노현에서도 두드러지는 곳이다. 남성 평균수명은 79.8세로 나가노현 평균보다 0.9세 높다. 고령자의 '활동적 여명(餘命)'과 '평균 여명' 부문에서는 아예 독보적이다. 70~74세의 경우 활동적 여명과 평균여명은 각각 8.3세와 18.3세다. 평균적으로 70대에 들어서도 8.3년을 더 일할 수 있는 체력이 있고, 18.3년을 더 살 수 있다는 뜻이다.

노인성 질환도 일본에서 가장 적다. 고령자 중 거동이 불가능해 누워만 있는 경우는 2.98%에 불과하다. 이는 일본 평균 5.33%의 절반 정도다. 치매도 일본 평균이 0.59%인데 반해 사쿠시는 0.52%다. 90세 이상 장수율 역시 일본 전체평균 3.18%에 비해 4.28%로 월등히 높다. 단순히 장수하는 데 그치지 않고 건강하면서 오래 사는 셈이다.

사쿠시의 장수가 주목되는 것은 자연 환경적 요소보다는 '건강 제일'을 슬로건으로 내걸며 장수 환경을 조성한 사회적 요인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사실 나가노현 지역이 장수 지역으로 부상한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60~70년대만 해도 오히려 단명자가 많았다. 산골이었던 만큼 간단한 치료만 받아도 목숨을 건질 수 있는 노인들이 죽어가고, 의사 한 번 만나는 게 하늘의 별 따기였다. 추운 날씨에 짜게 먹는 식습관 때문에 뇌졸중에 의한 사망률이 일본 최고였다.

사쿠시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쿠시 고령자지원과의 사카도 치요코(坂戶千代子)는 "30년 전만 해도 사쿠시는 단명 지역의 오명을 안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사쿠시가 장수촌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후반 풀뿌리 차원에서 성인병 예방 운동을 시작한 것이 계기다. 대표적인 게 고혈압과 뇌졸중으로 이어지는 염분 줄이기 운동이었다.

나가노 지역은 예부터 일본 된장의 산지로, 주민들은 끼니 때는 물론 하루에도 몇차례씩 된장국을 먹는다. 그러나 국에 함유된 염분은 전국 평균의 2배인 2%에 달했다. 바다가 없는 지역이어서 생선 역시 소금에 절인 게 대부분이었다.

주부·영양사들이 자발적으로 조직한 보건지도원이 각 가정을 돌며 염분을 측정해주고 염분 과다섭취시 건강의 악영향을 계도했다. 의사들도 고령자에 대한 무료 진료를 시작했다. 사쿠시 시립 아사마 종합병원에는 요즘도 생일을 맞는 시민들에게는 무료진단을 실시한다. 주로 고령자를 중심으로 하루 평균 20~30명 방문한다. 병원 관계자는 "노인들이 생일 검진을 받고 가면 1년은 안심해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자체도 적극 나서고 있다. 현재 사쿠시가 고령자를 대상으로 벌이는 사업은 60종류가 넘는다.

고령자 건강을 위해 정보통신 기기를 통해 원격의료를 추진하고 있고, 시가 운영하는 체육관에 고령자용 운동시설을 설치했다. 방문치과 보건사업 및 치매방지용 청공음악치료도 벌이고 있다. 희수(喜壽·77세)나 미수(米壽·88세)를 맞는 고령자들에게는 시에서 장려금 형식으로 장수 축하금도 지급하고 있다. 동시에 고령자대학이나 공민관 활동 등을 통해 '1인 1기' 등 삶의 보람을 찾을 수 있도록 평생학습활동도 지속적으로 벌이고 있다.

고단백 음식 섭취와 3세대 이상 동거하는 주거환경도 사쿠시의 또다른 특징이다. 인근에 강과 하천이 많은 덕분인지 대부분 잉어와 미꾸라지를 장복해 왔다. 머리부터 내장까지 모두 먹는다. 산과 들에 널려있는 메뚜기, 번데기는 물론 물방개까지 섭취해왔다. 벌의 유충도 간장에 조리거나 볶아서 먹는다. 동시에 전통적으로 결혼한 뒤에도 부모, 조부모와 함께 살면서 노인들을 공경하는 공동체 의식도 고령자들에게 정신적 안정을 부여하고 있는 요소로 꼽히고 있다.

미우라 다이스케(三浦大助) 사쿠 시장은 "사람은 나이가 들면 건강, 사회적 연계망, 경제기반, 삶의 보람 등 4가지를 상실한다"며 "고령자들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파악해 대처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도쿄|박용채특파원 pyc@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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