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돈오돈수, 제자는 돈오점수"
서명원 신부, '보조사상' 기고문 주장
(서울=연합뉴스) 이봉석 기자 = 신약성서(新約聖書)가 한국 불교의 논쟁거리인 돈오돈수(頓悟頓修)와 돈오점수(頓悟漸修)의 두 가지 사상을 모두 내포하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프랑스 신부인 서명원(52ㆍ본명 베르나르도 스니칼) 서강대 교수(종교학)는 최근 발간된 보조사상연구원 학술지 '보조사상' 제24집에 기고한 논문 '비교종교학의 관점에서 본 한국불교의 돈점논쟁(頓漸論爭)'에서 진리에 대한 체험 과정인 돈오돈수와 돈오점수를 가지고 신약성서를 새롭게 바라보고 있다.
서 교수는 논문에서 "신약성서를 아무리 읽어봐도 돈오돈수와 돈오점수의 표현이나 유사한 낱말을 찾을 수는 없지만 그 불교용어들이 의미하는 진리에 대한 체험의 구조와 상당히 유사한 내용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단박에 깨쳐서 단박에 수행이 완전히 이뤄지는' 돈오돈수는 그리스도에게 해당되고,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기까지는 반드시 점진적 수행단계가 따른다는 돈오점수는 예수의 제자에게 나타난다는 것.
서 교수는 "예수 그리스도는 공생활(公生活)을 시작하기에 앞서 돈오돈수와 아주 흡사한 체험을 했다고 볼 수 있는데, 이유는 그가 그 체험을 하고 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진리의 궤도를 조금도 이탈하지 않고 이타행(利他行)만 하면서 살다시피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이어 "예수는 혼자 광야에 가서 40일 동안 고행하며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악마에게 유혹을 받는다. 악마가 온갖 종류의 유혹들을 이용했음에도 예수의 마음을 전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며 "이는 더 이상 닦을 것이 없는 예수, 그 얻은 경지에서 더 이상 후퇴할 수 없는 확철대오(廓徹大悟)한 예수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반면 엉뚱한 길을 갔다가도 스승이 구현하는 이상으로 계속 되돌아오는 예수의 제자들은 스승의 부름에 응답함으로써 제자가 된다는 점에서는 돈오(頓悟)지만 그 후에도 더 오랜 시간을 두고 꾸준히 닦아야 한다는 점에서 돈오점수라고 볼 수 있다.
죽음을 앞두고 수난의 길로 들어가는 스승을 배반하고서도 다시 그 스승에게 돌아오는 사도 베드로의 경우나, 스승을 팔아 넘기고서 극심한 죄책감을 견디다 못해 스스로 자기 목숨을 끊었던 사도 유다의 경우를 통해서 돈오점수의 사례를 엿볼 수 있다는 것.
서 교수는 "이번 연구에서 그리스도교 전통 안에 나타나는 돈오돈수와 돈오점수의 관계를 통해 돈오돈수의 우수함을 찾을 수 있었다"며 "그렇게 볼 때 지눌 이후 지난 800년에 걸친 한국불교의 역사도 성철을 통해 결정되는 것으로 여길 수 있다. 즉, 성철의 사상은 돈오돈수적인 배타주의를 통해서 지눌의 지나친 돈오점수에 대응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anfour@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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