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공화국'을 보는 다양한 시선들

2005. 5. 19.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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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다 감았다를 수십번 반복했고 물을 몇 컵씩 들이켠 후에야 간신히 봤습니다.” 5・18광주항쟁의 ‘상징적 존재’인 고(故) 박관현 열사(당시 전남대 법대 3학년)의 누나 박행순씨(56)가 MBC 드라마 ‘제5공화국’을 지켜본 소감을 떨리는 목소리로 털어놓았다.

박관현은 1980년 당시 전남대 총학생회장으로 5・18 직전까지 광주시민과 학생들의 반독재투쟁을 주도하다가 82년 4월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체포돼 모진 고문을 받았으며 50일간의 옥중 단식투쟁 끝에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 역시 그 충격으로 5년 뒤 작고했다.

‘제5공화국’은 다음달 4일 13회부터 평범했던 광주 들불야학 교사 박관현이 총학생회장을 거쳐 항쟁 지도부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리면서 신군부가 어떻게 광주항쟁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지를 조명한다.

박관현이 나오는 첫장면은 검정고무신 차림의 그가 야학생들에게 왜 영어를 배워야 하는지를 역설하고, 어머니는 “뼈빠지게 농사지어 뒤를 대줬더니 집안의 기둥이 공부는 안하고 야학은 뭐여, 이 노무 자슥아!”라고 꾸짖는 모습이다. 박관현역은 탤런트 양현태, 어머니역은 변신호가 맡았다.

박씨는 “가슴에 맺힌 응어리 때문에 채널을 돌리고 싶었지만 역사의 진실을 놓치기 싫어 주의 깊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박씨는 어린 시절부터 동생을 뒷바라지하며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봤고 지금도 동생의 환영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그는 “관현이가 살아있으면 53살인데…. 방송사가 난관이 많을 텐데 사명감을 갖고 생생하게 그날을 재연하는 것 같다”면서 “가해자의 후예가 희생자 묘역을 찾아 머리를 조아리는 모습만 봐도 세상이 많이 변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는 드라마를 통해 그간 미처 몰랐던 사실들을 추가적으로 알게 된 것이 가장 큰 소득이라고 말했다. 특히 “전두환 일당이 절대 용납될 수 없는 항명과 치밀한 계략으로 정권을 찬탈하는 과정이 자세히 그려질 때는 머리가 쭈뼛해졌다”고 표현했다. 그는 “현재 아버지는 82세의 주름살 짙은 촌로가 됐고 당시 까까머리였던 동생들도 다 성장해 아이들을 둔 부모로 변했다”고 했다.

박씨는 5・18이 25년이나 흘러 자꾸 ‘역사’로 묻히는 느낌이지만 동생이 당한 교도소내 고문과 옥사 경위 등이 규명되지 않아 여전히 ‘진행중인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당시 머리를 찧어도 겉으로 표가 안나는 ‘징벌방’에 보내져 모진 고문을 받았다는 주장이다.

그는 매년 동생의 기일(10월12일)에 재야인사들과 동생이 잠든 5・18 신묘역과 구묘역(가묘)을 찾아 제를 지내고 있다. 10여년 전에는 동생의 희생에 대한 보상금을 받아 대부분 ‘관현장학재단’에 쏟아붓고 매년 고교생 2명과 대학생 2명의 학비를 보태고 있다.

박씨는 “세월이 많이 흘러 이제 가해자들을 용서하고 싶지만 그간 그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진정으로 용서를 비는 일이 없었으니 희생자들의 ‘큰 마음’조차 퇴색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요즘 이문세의 ‘사랑이 지나가면’이란 노래를 휴대폰 컬러링으로 담아 동생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고 있다. 전화를 거는 사람들조차 가슴이 뭉클해질 정도다. 그 노랫말처럼 ‘두근거리는 마음은 아파도 이젠 그대를 몰라요’를 매일 머릿속에서 반복하지만 언제나 ‘목이 메어와 눈물이 흘러도 사랑이 지나가면’이 눈앞을 가린다고 한다. 의도된 망각도, 명분 없는 용서도 쉽지 않은 까닭이다.

〈김정섭기자 lak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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