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代&代를 잇는다] 대전 "신약국"・"어은 태평양약국"

2005. 4. 28.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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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아들에게"약사는 환자를 위해서 존재한다. 항상 환자가 건강해질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길 바란다."아들이 아버지에게"약사가 된 지금에서야 아버지의 성실함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깨달았습니다. 아버지처럼 훌륭한 약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신뢰 하나로 아들의 긴 방황을 지켜본 아버지 신효철(63・신약국・대전시 동구 판암동) 약사와 의사의 길을 접은 뒤 알게 모르게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약사의 길을 택한 아들 신동엽(33・어은 태평양약국・대전시 유성구 어은동) 약사.이들 부자의 업은 남들처럼 아들이 어린 시절부터 곁에서 봐 온 아버지의 모습을 꿈꿔 오며 이어진 것은 아니지만 아버지에 대한 존경과 아들에 대한 신뢰 속에서 탄생돼 남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청소년 시절 음악에 빠져든 아들 동엽씨는 충남대 의대에 진학했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학교생활에 그다지 충실하지 못했다. 음악을 하기 위해 수업 빼먹기가 일쑤였으며 이로 인해 성적도 좋지 않았다.

의대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 자신보다 아버지가 더 기뻐하셨다는 말에서 그의 말을 통해 대학 시절의 아들을 신뢰 하나로 지켜보던 아버지의 애타는 심정이 짐작됐다. 의대를 관두겠다고 아버지에게 폭탄선언을 한 뒤 군 복무 기간 동엽씨는 제대 뒤 무엇을 해야 하는가 곰곰이 생각하게 됐다.

"아버지가 생각나더군요. 환자에게 약을 제조해 줄 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며 그들의 마음까지 치료해 주는 아버지가요."제대 후 다시 시험을 봐 약대에 합격, 아버지에게 합격통지서를 내밀었을 때 그동안 갈피를 못잡는 아들을 바라보며 가슴 조였을 아버지를 생각하니 가슴이 찡해졌다는 동엽씨. 아버지 신씨는 당시 상황을 "놀라움"으로 표현했다.

"약대에 진학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적도 없이 합격 통지서를 내미는 아들을 보고 정말 깜짝 놀랐어요. 그래도 내심 아버지를 이어 약사가 되겠다는 생각을 했을 아들놈을 보니 대견하더군요."언젠가는 아들이 방황을 끝내리라 믿었던 아버지. 그 신뢰의 덕분에 아들은 이제 어엿한 약사가 돼 그의 뒤를 잇고 있다.

"예전엔 몰랐어요. 약사 일이 쉬운 줄만 알았죠. 하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오전 8시에 문을 열고 밤11시에 퇴근하는 게 결코 쉽지 않더군요."약국에 관리 약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취미 활동 등을 하며 한없이 쉽게 일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다 보면 약국에 오는 환자들과도 멀어지고 결국 약국에 마이너스만 된다는 것이 동엽씨의 지론이다. 그리고 이 지론은 아버지에게서 배운 것.1970년대 대전에 약국이 그리 많지 않았을 때 신 약사는 아침 6시 약국 문을 열고 밤 1시가 넘어서야 귀가하는 고단한 삶을 살아왔다.

이 같은 생활 습관이 몸에 배어 60세가 넘은 지금도 매일 오전 8시면 약국 문을 열어 밤11시까지 근무하며 웬만한 일이 아니면 약국을 비우지 않는 아버지의 성실함이 아들에겐 큰 귀감이 되고 있다.

아버지와 아들이 동종 업계에서 일하면서 좋은 점 중 하나는 서로의 발전에 촉매제 역할을 한다는 것. 아들은 아버지에게 수십년 전에 출시된 약에 대한 자문을 구하고 아버지는 아들과 신약에 대한 의견을 나누며 다양한 의약품 지식을 공유하고 있다.

"그 나이 드시도록 새로 나온 약에 대해 공부하는 모습을 보면 대단하다고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부자간을 떠나 약사 후배로서 참 많은 자극을 받아요."아버지 역시 의약품을 다룬 지 10년도 안 된 아들이 신약은 물론 한약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지식을 쌓고 있는 모습이 의약품 공부를 이어 가는 이유 중 하나라고 밝혔다.

신효철 약사는 이렇게 "신동엽의 약사상"에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이제 8개월 된 아들을 둔 신동엽 약사는 아버지께서 당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아들을 믿고 아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아들이 약사를 하겠다면 말리지 않겠다는 뜻을 내비쳐 3대 약사를 싫어하지 않는 눈치였으며, 할아버지도 "손자가 약사가 된다면"이라는 가정에 미소를 지었다.

약사는 약을 통해 인간애를 실천할 수 있기 때문이며 환자들의 육체적 아픔을 물론 정신적 고통도 치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환자를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이들 부자의 모습에서 인간적인 약사상이 엿보였다.

*신효철 약사1941년 공주 출생공주 봉황초-공주중-공주고-영남대*신동엽 약사1971년 대전 출생대전 삼성초-보문중-대성고-충남대충청투데이 박병립 기자 enjoy-11@cctoday.co.kr/ 노컷뉴스 제휴사(대한민국 중심언론 CBS 뉴스FM98.1 / 음악FM93.9 / TV CH 162)<ⓒ. CBS 노컷뉴스 www.nocutnew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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