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광장] 운동화의 추억
1950년대부터 60년대 초반까지 아시아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군림했던 최정민씨의 축구화를 축구자료수집가인 이재형씨가 영국에서 입수했다는 보도를 보았다. 1920년대에 평양에서 만들었다는 그 축구화의 사진을 보노라니 운동화에 얽힌 수많은 기억들이 뇌리를 스쳐간다.
70년대만해도 축구 선수들은 발목 부분이 좀 내려왔을 뿐 최정민씨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축구화를 신고 뛰었다. 지금은 끼워넣는 식으로 되어 있는 스터드를 당시는 ‘뽕’이라고 불렀는데 가죽을 여러 겹으로 겹쳐서 축구화 밑창에 못으로 박은 다음 끌로 깎아내는 것이었다. 자기 축구화는 자기가 손질해야 한다는 까다로운(?) 선배들도 있었지만 대개는 후배들의 손에 맡겨지곤 했다. 그러니 선배들이 연습에 열중하는 운동장 한 구석에서 후배들은 옹기종기 모여앉아 신기료장수처럼 축구화 수선에 매달려야만 했다. 그뿐인가. 실밥이 뜯겨나간 축구공을 꿰매는 것도 후배들의 몫이었다.
기껏 선수라고 뽑혔는데 공 한번 제대로 차보지 못한 채 축구화, 축구공 수선이나 하고 있어야 했으니 그 망치질과 바느질에 한이 맺히지 않을 수 없었다. 좀 밉살맞게 구는 선배라면 자연히 굵은 못이 거칠게 박혀지게 마련이고 그런 축구화는 반드시 문제를 일으킨다. 경기 중에 못이 솟아오르는 것이다.
그 못이 발바닥을 찔러대도 당시 선수들은 아픈 줄도 모르고 잘만 뛰었다. 그래서 경기를 마치고 보면 스타킹 안에 신은 양말이 붉게 피로 물들어있기 일쑤였다. 커트 실링의 핏빛 투혼이 어떻다고? 왕년에 공을 차본 40대 이상의 한국 남자들에겐 흔하디 흔한 일이었다. 동네 축구대회에서는 이런 수준의 축구화조차 착용을 금지하는 게 관례였다. 선수들 전원이 축구화를 신는 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형평성을 고려한 조치였다.
나는 중・고등학교 4년간을 농구선수로 뛰었지만 단 한번도 제대로 된 농구화를 신어보지 못했다. 당시는 ‘BB화’라고 불리는 농구화가 명품으로 인정받고 있었다. ‘BasketBall’의 약자이기도 하고 특정 상표이기도 했던 이 ‘BB화’는 그 이름만으로도 우리를 설레게 했다. 그 ‘BB화’는 신동파 같은 국가대표선수들이 신는 신발이었고, 서울의 내로라하는 농구 명문학교 선수들이 신는 신발이었고, 장안의 멋쟁이들이 신는 신발이라고 했다. 물이 잘 빠진 청바지에 하얀 ‘BB화’를 신고 나가면 여자애들이 넋을 잃는다나 어쩐다나…. 그 신발의 가격이 한 켤레에 1,200원이라고 했으니 300~400원짜리 운동화도 어렵게 사 신는 우리들에겐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었다. 시장을 돌다 보면 요즘 말로 ‘짝퉁’ BB화를 찾을 수 있었지만 그마저도 500~600원 수준이라 구입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저 학생들이 누구나 신는 보통 운동화를 신고 농구공을 쫓아다녀야 했다.
그런 우리 앞에 어느날 체육 담당교사가 아디다스 스포츠화를 신고 나타나 충격을 주기도 했다. 세상에, 순전히 가죽으로 된 운동화라니…. 가격이 무려 3,000원이라는 것이었다. 베이지색 바탕에 그 눈부신 아디다스의 3선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이런 추억들과 함께 최정민 축구화의 사진을 들여다보고, 현관으로 나가 몇 켤레씩 어지럽게 널려있는 아들 녀석의 유명 상표 농구화들을 내려다본다. 시대가 변했듯 신발도 변했다. 그 신발을 신고 운동장을 달리는 이들의 마음은? 〈고원정|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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