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기부문화]조민중 기자 '타니네'회원들 사랑의 연탄배달 동행취재기

2004. 12. 23. 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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헉헉헉. 숨을 몰아쉴수록 몸은 더 많은 산소를 요구한다. 폐가 터지는 고통이 이런 것일까. 추운 날씨에 엄살을 부리느라 껴입은 속옷은 흥건히 젖은 지 오래. 안경엔 김이 서려 앞은 희미하고 장딴지는 한 계단씩 올라설 때마다 가늘게 떨린다. 셋 둘 하나. 남은 계단 수를 세며 겨우 올라온 연탄 배달 집. 그러나 이제부터가 시작이다. 온몸이 쑤신 판에 밝은 미소로 이웃과 만나는 것은 연탄 나르기보다 한층 어려운 과업이니까. 강원도 원주시 원동 160-1번지. 세계 최초로 설립된 ‘연탄은행’이 있는 곳이다. 이 은행 아닌 은행은 7년 동안 노숙자들에게 무료급식과 쉼터를 제공하고 있는 ‘원주 밥상 공동체’가 겨울을 나기 어려운 이웃에게 연탄을 공급하기 위해 2002년 12월 만든 자매 자원봉사 단체. 지난 11일 인터넷 포털사이트 엠파스의 자원봉사 카페 ‘타니네’ 회원들이 지난달 서울 마포에 이어 원주에서 두번째 연탄배달에 나섰다. ‘타니네’가 연탄은행과 처음 손잡고 실시한 이날 배달 목표량은 1000장. 한 가구가 한달 동안 소비하는 연탄은 70장에서 100장 사이. 우선 한달분을 전달하기로 했다. 오전 7시, 달콤한 늦잠의 유혹을 물리치고 달려온 날개 없는 천사 20여명은 도착하자마자 쉼터 청소를 끝낸 뒤 곧장 ‘사랑 배달’에 나섰다.

맨 먼저 해야 할 일은 리어카에 연탄 싣기. 입심 좋은 연탄은행 설립자 허기복 목사의 선창으로 ‘아자!’를 외친 뒤 연탄 쌓기에 들어간다. 가로 네장, 세로 다섯장씩 모두 스무장으로 한 단을 만든 뒤 그 위에 두개 단을 덧쌓는다. 3층 꼭대기 위에다 10장을 더 얹으면 모두 70장. 한달 사용할 최소분이다. 연탄 한 장의 무게는 3.6㎏. 전체 무게는 리어카까지 합쳐 근 300㎏. 한 조에 6명씩 연탄 배달부가 된다.

횡단보도에선 파란 신호등이 바뀔까봐 100m 육상 선수가 되기도 하고 가파른 언덕 길을 오르기 위해 역도 선수가 되기도 한다. 15분여 걸려 배달현장에 도착했지만 대다수 조원들은 이미 초주검 상태. 배달 목적지에 겨우 도착했을 뿐이란 사실을 모두 알지만 도무지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간신히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된 것은 오로지 집 앞에 나타난 노인 덕분. 이 연탄들로 겨울을 이겨낼 수 있는 이가 기다리고 있는데 여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지 않은가. 부쩍 새로운 힘이 솟는다. 6명이 어느새 한 줄로 늘어서고 배달이 다시 시작된다.

허리를 돌려 연탄 옮겨 나르기를 수십 번. 단순 계산으로 치자면 70번이지만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들인 공까지 합치면 수백번은 주고받은 것 같다. 허리는 끊어질 것 같고 두 손은 마비된 지 오래. 중간에서 쉬면 다시 시작하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지난달 마포 배달에서 터득한 터라 멈출 수 없다. 단번에 끝. 이제야 주위를 둘러 볼 여유가 생긴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연탄아궁이. 쩍쩍 금간 형상으로 미루어 당장 연탄가스가 새나올 것 같다. 쌀통은 빈 지 이미 오래. 허술한 창문은 바람을 막기에 역부족이다. 이렇게 잠시라도 살피고 나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져 속까지 상한다. 간단한 인사말을 건네기가 무섭게 미안해하는 할아버지를 뒤로하고 바삐 자리를 뜬다. 다음 배달 코스도 만만치 않으니 여유부릴 틈이 없다.

겨우 한 집 배달했을 뿐인데 무슨 생각들을 하는지 모두 말이 없다. 앞서 한자리에 모였을 때의 활기는 다 어디로 간 것일까. 그러나 암담한 순간에 보이지 않게 쌓이는 내공이 앞으로 닥쳐올 더욱 어려운 순간들을 헤쳐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타니네’ 가족들은 모두 안다. 침묵이, 또 다른 희망을 낳고 있었다.

원주=조민중 기자 inthepeopl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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