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시대 新풍속도]"헌옷 수선..땡처리 찾고.."한푼이 아쉬워요"

2004. 10. 27. 0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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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한없이 바닥으로 추락하면서 우리 사회의 풍속들마저 달라지고 있다. 서민들 사이에서는 ‘외환위기 때보다 살기 힘들다’는 말이 흘러 나온다. 하지만 절박함 속에서도 희망은 싹트는 법. 허리띠를 졸라매며 내일을 기약하는 서민들도 많다. 자가용 대신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해 출퇴근하고 의류수선집을 찾는 등 알뜰생활 지혜를 총동원하고 있다.

생활고 못견뎌 속세버리고 入山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자살한 사람은 1만1000명(10만명당 24명)으로 외환위기 때인 1998년(〃 19.9명)보다 많았다.

이는 통계청이 사망원인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83년 이후 최고치이며 2002년보다 4.9명, 93년보다 10.6명 늘어난 것이다. 자살의 원인이 전적으로 생활고에 따른 것은 아니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워지면 자살자가 늘어난다는 사실을 입증해준다.

속세를 버리고 출가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올해 태고종 스님이 되기 위한 교육 과정에 참가한 사람은 281명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이전까지 가장 많았던 IMF 직후인 99년보다도 82명 많다. 이들 대부분은 출가 이유를 밝히지 않았지만 불황의 여파가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게 교계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고쳐쓰자” 의류・구두 수선집 호황 헌옷을 고쳐 입는 사람들로 의류 수선집이 붐비고 있다. 이화여대 앞에서 10년째 의류수선집을 운영하는 이수연(46)씨는 “불황에 장사가 잘 되는 업종이긴 하지만 요즘처럼 손님이 많은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같은 지역에 위치한 의류・핸드백・구두 수선집들도 지난해까지만 해도 하루 손님이 5〜6명 수준이었으나 올 들어서는 10명을 웃돈다.

서울시내 한 백화점 판매사원 박모(24)씨는 “구입한지 1년이 넘은 옷을 무료로 수선해 달라며 가져오는 손님이 일주일에 1〜2명씩 있다”면서 “세일 기간 매출도 예전 같지 않은데다 수선 손님까지 많아져 불황이 실감난다”고 말했다.

할인쿠폰・마일리지 사용은 필수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소비자들에게 쿠폰과 마일리지카드 사용은 이제 필수적이다. 무료 배포 ‘쿠폰북’을 발행하고 있는 코코펀은 쿠폰 회수량이 지난 9월 기준 18%로 올 초 한자릿수였던 것에 비해 크게 늘었다고 밝혔다.

소비자들의 호응에 힘입어 10월부터는 매월 100만부로 발행 부수를 늘렸으며, 지역을 세분화해 연말까지 전국 50개판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구매 금액을 포인트로 적립해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으며 사은품도 주는 유통업체의 마일리지카드도 인기다. 뉴코아아울렛과 킴스클럽은 마일리지 카드제도를 신설한지 한달만에 가입 고객이 24만명을 넘어섰다.

교회・성당・무료 예식장 찾아 실속결혼식호화 결혼식보다 ‘실속 결혼식’이 인기다. 불황의 영향에다 집값이 만만치 않고 디지털가전의 생활화로 혼수비용이 예전보다 증가했기 때문이다. 한국결혼문화연구소의 2000년과 2004년 결혼비용 조사 결과에 따르면 4년 전과 현재의 결혼비용에서 집값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60%로 비슷했으나, 총 비용은 7845만원에서 1억3498만원으로 두배 가까이 늘어나 집값이 예비부부들에게 큰 부담이 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예식비용이라도 줄이려는 추세가 이어지고 있는 것. 식장대여료가 무료이거나 매우 저렴한 교회와 성당에서의 결혼식이 특히 인기다. 명동성당은 이미 오는 12월까지 토요예식 예약이 마감됐고 강남의 서초성당과 잠원・압구정성당 등도 11월까지 예약이 꽉 찬 상태다. 잠실운동장과 남산・한강공원, 녹사평 지하철역 등에 있는 무료 결혼식장도 올 가을 시즌 들어 문의전화가 두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사라지는 집들이… 출장요리 업체들 한숨신혼부부와 새집 입주자들의 필수 코스였던 ‘집들이’도 비용부담 때문에 점차 줄어드는 추세다. 지난달 말 결혼한 양모(31)씨는 회사 직원과 친구들을 위한 집들이를 생략키로 했다. 양씨는 “맞벌이 하는 아내의 회사 직원과 친구들까지 나눠 부르려면 집들이에 들어가는 비용만 100만원을 훌쩍 넘을 것으로 예상됐다”며 “대신 가까운 사람들에게 점심식사를 한번 사는 것으로 끝낼 예정”이라고 말했다.

일산에서 출장요리 일을 하고 있는 박순영(46)씨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결혼철 직후인 10월 말〜11월이면 집들이 출장이 거의 주말마다 차있었지만 이번 가을에는 한달에 한두 건 정도”라며 “예전에는 맞벌이부부들이 집들이를 할 때 출장 요리사를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최근에는 함께 외식을 하고 2차만 집에서 간단하게 하는 것이 대세가 된 듯하다”고 말했다.

"싸야 팔린다" 백화점・할인점 폭탄세일 붐알뜰 쇼핑족이 늘면서 백화점과 할인점, 홈쇼핑 등은 하루가 멀다하고 각종 행사로 소비자를 유인하고 있다. 우리홈쇼핑은 품목별로 ‘반값행사’ ‘75% 할인행사’ 등의 이벤트를 열고 있다. 삼성테스코 홈플러스는 27일까지 가전 초특가 판매전을 개최했다. 김치냉장고 63만〜85만원, 29인치TV 65만8000원 등 시중가보다 훨씬 싼 가격에 가전을 판매한다.

가격 비교 서비스도 늘었다. 인터넷쇼핑몰 인터파크는 온・오프라인 매장의 가격을 휴대전화로 즉시 비교할 수 있는 ‘SMS 가격도우미 서비스’를 선보였다. 오프라인 매장에서 알아본 제품의 모델번호를 인터파크에 휴대전화 문자메시지(SMS)로 문의하면 해당 제품의 인터파크 판매가격과 적립금, 무이자 할부 등을 다시 문자로 받아볼 수 있는 서비스다.

자가용・택시 안타고 버스・전철로 출퇴근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택시업계(법인・개인)의 매출액은 7조4338억원으로 전년보다 2.8% 감소했다. 반면 시내버스업계는 3조1848억원으로 7.2% 증가해 상반된 결과를 보였다.

통계청 관계자는 “지난해 택시업체와 버스업체 수는 각각 1779개와 401개로 전년에 비해 변화가 없었지만 매출액에서는 희비가 엇갈렸다”면서 “경기침체 영향으로 택시 이용객들이 줄어들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비씨카드가 자사 후불교통카드 소지 회원 560만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9월 중 교통카드 이용건수는 연초에 비해 20% 이상 늘어났다. 서울과 인천・경기지역 등 수도권 1월 교통카드(버스와 지하철) 이용건수는 2487만건이었으나 9월에는 3080만건으로 23.8% 급증했다.

"기름값 아껴야죠” 운전자 셀프주유 인기자신이 직접 기름을 넣고 할인혜택을 받을 수 있는 ‘셀프주유소’를 이용하는 운전자들이 많아졌다. 셀프주유소는 90년대 후반 국내에 처음 소개됐지만 전국적으로 20여곳에 불과할 만큼 인기를 끌지 못했다. 손에 기름 묻히기를 싫어할 뿐 아니라 주유원이 넣어주는 것에 익숙한 국내 운전자들의 특성 때문이다. 하지만 기름값이 계속 오르면서 상황이 바뀐 것. 서울 여의도에서 주유소를 운영하는 허호준 사장은 “주유소 전체 매출은 15% 정도 줄었는데 셀프주유 코너에서는 오히려 5% 늘었다”고 말했다. 서울 시내에서 셀프주유소 2곳을 운영하는 SK㈜ 관계자도 이들 주유소의 매출이 일반 주유소에 비해 최고 30%까지 증가했다고 밝혔다.

당장 생활비 더 급해 적금・보험 해약 일쑤 생활비에 쪼들려 은행 예・적금과 보험 계약을 해약하는 사람도 늘어났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들어 지난 5월까지 조흥 우리 제일 외환 신한 한미 하나 등 7개 주요 시중은행의 월평균 적금 해약 건수가 지난해보다 많게는 50%까지 늘어났다.

이미 낸 보험료 중 상당 부분을 잃게 되는 보험 해약도 많아졌다.

2002회계연도(2001년 4월〜2002년 3월)에 13.9%이던 생명보험업계의 실효해약률(보험료를 2개월 이상 연체하거나 해약한 건수 비율)은 2002년 14.8%로 높아졌고 올 4〜7월에는 6.4%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4%포인트 증가했다.

아파트임대료・전기 수도료도 제때 못내 아파트 임대료를 제때 내지 못하는 가구가 늘고 있다. 대한주택공사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현재 전국 주공 임대아파트(영구・국민・공공임대) 29만5982가구 가운데 한달 이상 임대료를 체납한 가구는 22.2%(6만5764가구)에 이른다.

주공 임대아파트 체납률은 2001년 16.5%에서 2002년 18.0%, 2003년 20.5%로 계속 높아지고 있다.

세금 체납액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한전에 따르면 지난 5월 현재 전기요금 연체가구 수는 지난해 12월보다 10만가구 이상 증가한 89만3000가구에 달했다.

연체금을 내지 못해 전기가 끊긴 가구 수도 지난 6월 말 현재 3268가구나 됐다. 상수도 요금 체납액 역시 8월 말 현재 144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0억원)보다 14억원 늘었고, 건강보험료를 3개월 이상 내지 못한 가구는 7월 말 현재 172만7000가구에 이른다.

연탄보일러 주문 폭주… 생산라인 풀가동한때 사양길로 접어들었던 연탄 판매업체와 연탄보일러 제작업체들이 밀려드는 주문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기름값이 폭등하면서 기름 대신 연탄을 연료로 사용하는 이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지난 21일 경기도 부천의 목화연탄보일러공장 사무실. 김흥중(57) 사장과 직원 4명은 끊임없이 울려대는 전화를 받느라 숨돌릴 겨를이 없어 보였다. 김 사장은 “직원들의 휴대전화와 팩스까지 포함해 하루에 1000통은 걸려오는 것 같은데 400통 정도는 못 받는다”면서 “주문량이 지난해보다 4〜5배 늘었지만 생산량이 부족해 보낼 물건이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요즘 하루 평균 300여대씩 주문이 들어오지만 공장을 풀가동해도 생산량은 절반에 그치고 있다. 연탄 주문량도 크게 늘었다. 충청북도내 5개 연탄 제조업체들은 최근 들어 업체별로 생산량을 10〜20% 정도 늘렸다.

"허리띠 졸라매자” 자동차 내수판매 최악경기침체와 함께 우리 경제를 강타한 고유가 충격으로 올해 자동차 내수판매는 최악에 머물 전망이다. 한국자동차공업협회에 따르면 올해 자동차 내수판매는 지난해보다 16.5% 감소한 110만대 정도가 될 것으로 예상됐다. 이는 98년 판매량 78만대를 제외하면 90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지난 1〜9월 내수판매는 지난해 동기 대비 20.2% 감소한 80만7000대로 집계됐으며, 4・4분기 판매 역시 지난해 동기 대비 4.5% 감소한 29만3000대에 그칠 것으로 관측됐다.

지난해부터 침체기에 빠져든 중고차시장도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특히 경유값 인상과 세금부과 기준 변경 등 악재가 이어지면서 그동안 인기를 끌던 레저용차량(RV)이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가격 하락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염호상・원재연・권세진・조현일기자/hsyou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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