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단골 맛집]"정상에서도 먹을 생각만 합니다"

2004. 7. 2. 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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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인 엄홍길그는 산이다. 단단한 몸, 편안한 얼굴, 선한 눈매. 영락없이 산의 인자함을 품고 있다.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히말라야 15좌 정복에 성공한 것도 그가 속세에 있는 작은 산이기 때문이다.

산악인 엄홍길. 에베레스트 남서벽을 등반하기 시작한 1986년부터 지금까지 그는 매해 평균 2차례씩 히말라야 고봉을 넘나들었다. 그럴 때마다 산은 그에게 자신의 앙가슴을 열어주었다. 산의 가슴이 품고 있는 자연의 위대함을 그 는 연신 세상사람에게 퍼 날랐다. 그러면서 그도 차츰 산이 되기 시작했다. 산과 대화가 가능해진 것이다. 때로는 산에 안겨 "엉엉" 울기도 한다. 산은 그의 어머니고 스승이니 그럴 만도 하다. 문득 "아, 이 사람은 정말 한국의 보물이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그가 처음 산과 인연을 맺은 것은 세 살 때다. 고향인 경남 고성을 떠나 원도봉산 중턱으로 이사한 것이다. 걸음마를 산에서 배웠다. 유년기-소년기-청년기도 모두 산에서 보냈다. 산을 타는 그는 흡사 다람쥐 같았다고 한다. 산악인 엄홍길을 만든 배경이다.

고성에서 서울로 온 어머니는 도봉산 계곡에서 등산객을 상대로 식당을 운영하셨다. 이런 곳에서 빠지지 않는 음식이 "닭찜"이다. 걸음마를 하면서 보기 시작해 성장할 때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봐온 닭요리니 산만큼이나 그와 인연이 깊은 것이 닭이리라. 이런 환경은 그의 입맛에도 영향을 끼쳤다. 그가 잘 먹는 음식이 닭이다. 그가 자극적인 음식을 잘먹는다는 것도 어릴 때부터 닭찜 같은 매운 음식을 많이 먹었기 때문이다.

20대 중반 에베레스트 등반 계획을 세우고 장비를 구하러 동대문 시장을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또 하나 인연을 만든 곳이 있다. 바로 "닭 한마리"집이다. 그는 이 집 사장 내외를 "아버님, 어머님"이라고 부르며 살갑게 지냈다. 에베레스트 정복 후에는 한약재인 용을 사다 줄 정도로 정이 들었다.

그러니 그와 이 집 사장 내외는 자식과 부모 같다. 그가 웃으며 하는 말이 있다. "딸을 달라고 졸랐으면 주었을 것"이란다. 그 딸 윤영실씨(현 사장-39-작은 사진)는 지금 가업을 이어받아 "닭 한마리집"을 운영하고 있다. 카운터에 앉은 윤사장에게 물어보니 "어릴 때 그런 농담 많이 했다"면서 "진짜 심각하게 결혼 얘기가 오갔으면 내가 거부했을 것"이라며 카르르 웃는다. "산악인은 본인이나 부인이나 외롭다"는 것이 그 이유다.

그가 처음 이 집을 찾은 것은 사람보다는 맛에 끌려서다. 당시는 닭 요리에 찜-조림-튀김 등은 있었어도 "닭 한마리"라는 요리는 없었다. 육수에 닭을 넣고 끓여 소스에 찍어 먹고, 다 먹은 후 그 국물에 국수를 익혀 먹는 요리는 이 집에서 처음 만들었다. 요즘 "닭 한마리"라고 간판을 붙인 그 많은 음식점의 진원지가 바로 이 집이라는 얘기다. 엄홍길이 어머니라고 부르는 진옥화할머니(72)가 개발자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도 산악인들은 삼삼오오 모여 동대문 시장 골목을 돌며 등산장비를 구했다. 그도 일주일에 두 번, 수-금요일이면 반드시 이 곳을 찾았다. 모임이 끝나면 가는 곳이 근처 식당이다. 그러다 우연히 이 집의 "닭 한마리"를 먹었다. 그는 처음 와서 먹던 그 맛을 지금도 기억한다. 얼큰하고 시원한 국물, 부드러운 육질, 마치 "나를 위해 만든 음식" 같았고 "환장하게" 맛있었단다. 그 맛에 반해 등산장비 사러올 때마다 이 집을 찾았고 결국 사장 부부와 부모-자식 같은 관계가 된 것이다.  그는 "산악인은 체력을 비축하기 위해서라도 어떤 음식이든 가리지 말고 잘먹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잖아도 식성이 좋아 무엇이든 잘 먹던 그에게 "체력을 위해서"라는 이유까지 생겼으니 세상 음식은 모두 자신을 위한 것 같았다. 그가 얼마나 잘 먹고 성격이 좋은가는 중-고등학교 때의 생활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중-고등학교 때 도시락을 한 번도 가져간 적이 없다고 한다. 숟가락만 가지고 다녔다. 가난해서가 아니다. 그래야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 저 사람에게 한 숟가락씩 얻어 먹어도 도시락을 가지고 간 다른 학생보다 훨씬 더 많이, 휠씬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성격이 활달하고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어야만 가능하다. 바로 그가 그런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랬으니 진옥화 할머니 부부와 부모-자식 관계를 유지할 수 있지 않았겠는가.산에서는 무슨 생각을 하느냐고 물었다. 그는 "힘들어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다"면서도 "산을 오를 때는 "나를 받아달라"며 산과 대화하고, 산과 하나가 되려고 한다"고 귀띔한다. 베이스캠프에 있을 때는? 먹는 것밖에 생각나지 않는단다.

밤이 되면 베이스캠프에서는 아무 할 일이 없다. 그러면 생각나는 것이 "아, 어느 집 무슨 음식이 먹고 싶다"란다. 그럴 때마다 그가 동료에게 얘기하는 음식이 이 "닭 한마리"다. 이 집이 산악인들에게 유명해진 것은 그의 홍보 덕분이다. 찾아가는 길 : 종로5가에서 종로6가로 올라가다보면 오른편에 백화점약국이 나온다. 이 골목을 따라 들어가 첫째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돌아 10m 정도만 가면 나온다. 아니면 백화점 약국을 지나 정보당안경까지 가서 골목을 들어서면 바로 보인다. 야들야들 영계 맛 "죽어도 좋아" 1978년 개업한 "진옥화할매 원조 닭한마리"에는 재료가 딱 세 가지다. 닭-배추-고추. 닭은 생후 35일 된 신선한 영계만 골라 냉동하지 않고 사용한다. 배추는 고랭지 동풍배추 중에 상품(上品)으로 선별한다. 다른 배추보다 비싸 주위 음식점에서는 엄두조차 못내는 배추다. 고추도 가장 좋은 것만 골라 가져온다. 이 재료들은 처음 개업하던 때부터 지금까지 공급업체가 바뀌지 않았다. 이 집에서 "닭 한마리"를 요리하는 순서는 이렇다. 영계를 끓여 기름기를 뺀다. 기름기가 빠지면 육질이 질기지 않고 담백하다. 이 닭을 세숫대야 같은 커다란 양푼에 통째로 담는다. 여기에 감자-대파 등 보조 재료를 넣고 끓인다. 얼큰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김치를 넣는다. 김치는 냉면 그릇에 하나 가득 나온다. 끓는 동안 붉은 고추를 간 고추양념에 겨자-식초-간장 등을 넣어 소스를 만든다.

양푼은 5~10분이면 끓는다. 한번 끓인 것이라 그렇다. 닭고기를 새콤매콤한 소스에 찍어 먹는 맛이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정도다.

이보다 더 맛있는 것은 국물이다. 진하고 담백한 맛이 막힌 가슴을 뚫는다. "육수는 소금으로 간을 한 원탕에 야들 야들한 영계 수백마리를 한꺼번에 넣고 삶기 때문에 진함과 맛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이 윤사장의 설명이다. 기름기가 빠지면 그 국물에 맹물을 섞어 육수를 만든다. 이것은 종업원이 없을 때 윤사장이 만들어 놓는다. 종업원은 출근해 이미 만들어 놓은 육수를 정해진 양만큼 양푼에 부어 손님에게 주면 된다. 이 음식을 만든 진옥화할머니는 처음에 닭요리 여러 가지를 만들어 10명의 손님에게 열흘간 시식시켰다고 한다. 그중 8명 이상이 선택한 것이 바로 "닭 한마리"다. 닭한마리 가격은 13,000원. 세 사람이 먹을 수 있으니 싼 편이다.

다만 이 집에서는 서비스를 기대하면 안 된다. 물도 직접 떠다 먹어야 하고 김치도 가져다 먹어야 한다. 닭도 직접 잘라 먹어야 한다. 윤사장은 서비스를 안 하는 대신 싸게 받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재료가 비싸 종업원(현재 10명)을 더 이상 고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맛있는데 셀프라고 못 먹겠는가. 사람들이 몰려들어 겨울에는 보통 30분은 기다려야 한다. 오전 10시에 문을 여는데 오후 10시 30분 이전에 입장하면 밤 12시까지 먹을 수 있다. 국수-감자사리 2,000원이다. 1,2층에 모두 70석이 있다.

글[황인원 기자 hiw@kyunghyang.com]사진 임재철[경향미디어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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