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크로키] 자연수에는 왜 0이 없는가

2003. 12. 17. 0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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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고중숙의 사이언스 크로키] 미국의 저명한 수학 저술가 하워드 이브는 한 책의 첫 문장에 인상적인 한마디를내세웠다. “수학은 필요에서 나왔다”는 명제가 그것이다. 말하자면 이는문제보다 답을 먼저 내세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초등학교 이래 골머리를앓으면서 내뱉곤 하는 “누가 왜 수학을 만들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바로 이것이기 때문이다. 짐작컨대 이런 의문을 품기는 우리나 그네나 매한가지인모양이다. 그리고 수학의 보편성이 이렇게도 드러난다는 점 또한 인상적이다.

수학의 근원이 필요성에 있다는 점을 너무나 뚜렷이 보여주는 한 예가“자연수에는 0이 없다”는 사실이다. 사람이 맨 처음 숫자를 ‘발명’하게 된상황은 오직 상상을 통하여 파악할 수밖에 없다(“수가 발명된 것인가 발견된것인가?”에 대해서 많은 논쟁이 있다. 여기서는 이 글의 취지에 따라‘발명’으로 썼을 뿐 다른 의미는 없다). 그런데 이 상상의 과정에서 착안할 가장중요한 사항은 “수는 뭔가 ‘있는’ 것을 나타내기 위하여 만들어졌다”는점이다. 예를 들어 ‘하나’로 존재하는 사물에 대해서는 ‘1’로 나타낸다.

그리고 ‘둘’로 존재하는 사물에 대해서는 ‘2’로 나타낸다. 그리고 이 과정은‘3’ ‘4’ ‘…’로 끝없이 이어진다. 이 과정은 참으로 ‘자연스러우며’따라서 이렇게 탄생한 수를 ‘자연수’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자연수에는 당연히 ‘0’이 빠진다. 애초 ‘있는 것’을나타내기 위하여 수를 만든 이상 ‘없는 것’에 대해서는 나타낼 필요성도 없기때문이다. 실제로 피타고라스와 유클리드 등 그리스의 위대한 수학자들조차‘0’을 갖지 않은 채 그들의 수학을 구축했다.

그런데 우리의 수학 교육 과정에서는 이런 점을 소홀히 다룬다. 이 때문에 ‘0의유래’에 대하여 잘못된 인식을 갖는 경우가 많으며, 단순히 “그냥 0은빠진다”라고 기계적으로 암기하는 경우도 많다. 이런 현상의 귀결이랄까, 최근에나온 한 교양수학 책은 ‘뺄셈’이 어렵기 때문에 자연수에서 0을 제외했다고설명했다.

물론 이렇게라도 결론적으로 수학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갖게 된다면 좋을것이다. 그러나 언뜻 순수한 논리적 산물로 보이는 수학도 ‘필요성’이라는역사적 맥락을 외면해서는 결코 그런 경지에 이를 수 없다.

그런데 필요가 발명을 이끄는 것만으로 이 과정이 모두 마무리된다고 보아서는 안된다는 점 또한 중요하다. 다시 말해서 필요와 발명은 닭과 달걀의 관계와도 같다.

이렇게 만들어진 자연수는 자연수의 틀을 넘어선 새 용도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냉장고가 발명된 뒤 본래 수요지인 열대와 온대 지방을 넘어 언뜻 필요성을 전혀느끼지 못할 것 같은 에스키모들까지 이를 구입했다. 이를 두고 ‘놀라운상혼’이라고도 말하지만 발명이 필요를 창출한다는 점에 대한 좋은 예임에틀림없다.

이 사슬 구조 속에서 다양한 수가 꼬리를 물고 나타났고 수학의 적용 영역 또한계속 확대되었다. 이 과정 중에 음수와 허수 등이 등장한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특히 허수는 그 이름과 달리 실수 못지않은 실질적인 수이다. 이것이 없다면오늘날 전자공학 혁명의 뿌리에 해당하는 양자역학은 수립되지 못한다. 결국수학도 오직 허공 속의 존재가 아니라 ‘지상에서 영원으로’ 이어지는 현실적존재임을 잘 이해해야 한다.

고중숙 | 순천대학교 교수 ・ 이론화학 jsg@sunchon.ac.krⓒ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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