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문화> 드라큐라 백작 등장 1백주년

1997. 8. 15.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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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聯合)) O...오늘날까지도 서양문화에서 어엿히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 흡혈귀문학'의 원조인 `드라큐라'가 세상에 출현한지 올 여름으로 꼭 1백년이 된다.

美 로스앤젤레스에서는 학자들과 드라큐라팬들이 참여한 가운데 4일간 기념대회가 열린다고 시사주간지 '유에스 뉴스& 월드리포트'는 최근호에서 '드라큐라 1백세'라는 제목의 기사로 전하고 있다.

드라큐라를 이 세상에 탄생시킨 장본인은 더블린 출신으로 극장매니저 일을 하던 아브라함 스토커. 그는 1897년 8월 런던에서 소설 「드라큐라」를 출판했다. 당시 정가는 8실링.

스토커는 「드라큐라」 이외에 당시로서는 꽤 인기를 끌었다는 10여권의 소설을 내놓았으나 「드라큐라」를 제외한 나머지 소설들은 출판됐다는 사실외에는 모두 잊혀진 존재가 돼버렸다.

영국 문학에서 흡혈귀가 등장한 것은 18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의 내용은 그리스 민간설화에서 힌트를 얻은 것으로 추론하고 있다.

그러나 스토커는 기존의 드라큐라에다 큰 변화를 주었다. 먼저 드라큐라의 모습이 거울에 나타나지 않도록 했다. 영혼을 판 사람은 그림자가 없다는 당시의 속설과 맥을 같이 한다고 할 수 있다. 또 드라큐라는 마늘을 싫어하고 심장이 꿰뚤려야 비로소 죽는다는 조건을 달았다.

스토커는 여기에다 15세기 당시 말뚝을 꿰찌르는 刑을 집행하는 등 잔악하기로 영주(領主)로 유명한 블라드(Vlad the Impaler)를 모델로 하고 실제로 그가 살았던 트란실바니아 지방을 이야기의 무대로 정했다. 그럴듯한 분위기를 더한 것이다.

애초 스토커의 「드라큐라」는 제법 팔렸으나 오싹하는 공포분위기 보다는 당시 빅토리아風과는 색다른 에로티시즘이 오히려 독자의 구미를 당겼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드라큐라백작에 대한 관심을 끌기 시작한 것은 1922년 최초의 드라큐라영화로 꼽히는 '노스페라투(Nosferatu)'가 나오고 난 이후. 그 때부터 흡혈귀영화가 쏟아져 나왔다.

드라큐라 전문가 레오나드 울프씨는 "F.W. 머나우 감독의 무성영화 '노스페라투'는 흡혈귀영화의 최고걸작으로 몽롱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그 작품을 능가하는 것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고 단언하고 있다.

울프씨는 이외에 드라큐라 백작의 딸이 저주를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에 초점을 맞춘 '드라큐라의 딸'(1936), 드라큐라가 서부극에 등장하는 것으로 각색한 '꼬마 빌리와 드라큐라의 대결'(1966)을 3대 걸작으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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