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극인(丁克仁)의 外孫婦가 쓴 분재기(分財記)등 고문서 8점 발견

1997. 3. 5. 09:5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정읍(井邑)=연합(聯合)) 朴喜敞기자 = `상춘곡(賞春曲)'의 작자인 不憂軒 정극인(丁克仁)(1401-1481)의 外孫婦 鄭씨가 자녀들을 위해 작성한 분재기(分財記)를 비롯, 道康 金씨 訓導公파 종손 5대가 당시 조정으로부터 받은 교지(敎旨)와 敎牒 등 8점의 문화재급 고문서가 발견됐다.

이 고문서들은 전북(全北)도 문화재전문위원 崔玄植씨(67.정읍(井邑)문화원장)가 최근 자료 조사를 위해 道康 金씨의 19대손인 金湞基씨(65.전북(全北) 정읍(井邑)시 칠보(七寶)면 詩山리 763)를 방문해 찾아낸 것이다.

崔씨에 따르면 1524년(중종 19년) 10월 15일에 쓰여진 분재기는 정극인의 외손부 鄭씨가 작성한 것으로 가로 1백7㎝, 세로 77㎝의 한지에 한자(9백40자)로 분재 내력을 기록하고 작성자인 鄭씨와 증인 2명, 대필자 등 4인의 이름을 쓰고 수결(서명)을 했다.

분재기에서 鄭씨는 "여자의 몸으로 병중이어서 생사를 알지 못하므로 자녀들에게 노비와 전답을 분배한다"며 "만약 자손중에 후사가 없으면 그 재산을 타인에게 주지 말고 종손에게 주어야 한다"고 기록했다.

또 "재산으로 다툼이 일어나면 불효이므로 불효가 누구에게 있는지 관청에 고발하여 시비를 가리라"고 지시하고 "혼자가 된 장녀도 양자를 들이면 제사를 지낼 수 있도록 분배하라"고 했다.

특히 슬하에 2남 3녀를 두었던 鄭씨는 장자 상속이 원칙이던 당시의 사회통념과 달리 차남에게도 노비 19구(口)와 답 2결 53부 7속, 전 1결 14부 및 집안 노비가 경작하던 답 19두락을 분배했다.

고문서중에는 鄭씨의 남편 金希尹(생년 미상)의 생원 입격(합격) 교지와 아들 若晦, 손자 元, 증손자 灌 등 일가 5대가 1495년(연산 1년)부터 1615년(광해 7년)까지 받은 교지 4점과 공직 임명장인 교첩 3점 등 7점이 포함돼 있다.

崔씨는 "남성이 아닌 여성 주도의 분재로 차남과 출가외인으로 취급받던 장녀에게도 분배가 이루어졌다는 점이 주목되며 교지와 교첩은 일가 5대의 1백20년에 걸친 사회활동 자료로 당시 사회생활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고 밝혔다.(사진 있음)

Copyright © 연합뉴스. 무단전재 -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