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실종(失踪) 4년,개구리 소년은 어디에?"

1995. 3. 25.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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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죄 희생 가능성 정밀 재수사 필요 =

(대구(大邱)=연합(聯合)) 李松夏기자 = 91년 3월 26일.

그날은 화요일이었지만 기초의원 선거 투표를 위해 임시 공휴일로 지정돼 어른들은 투표장으로 나가고 학교를 하루 쉬게된 어린이들은 해방감에 젖어 있었다. 아침부터 잔뜩 찌푸렸던 하늘이 저녁 무렵 가랑비를 뿌려 봄날씨 치고는 쌀쌀한 편이었다.

대구시 달서구 이곡동 사랑봉 마을 소년 5명은 이날 오전 8시 40분께 마을 뒷편 臥龍山으로 도롱뇽 알을 줍기 위해 길을 나섰다.

나무 막대기와 빈 우유통을 든 소년들은 오전 9시께 산으로 가는 길목에서 주민들에게 목격됐다.

소년들은 낮 12시께 와룡산에서 조금 떨어진 마을 인근 쌍마섬유 공장 앞에서 학교 친구와 우연히 만나 얘기를 나누고 헤어졌으며 오후 2시께 다시 와룡산 어귀 불미골 입구에서 마지막으로 주민에게 목격된 후 4년이 지난 지금까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들은 실제로는 개구리가 아닌 도롱뇽 알을 주으러 간다고 남은 친구에게 말했는데도 개구리를 잡으러 간 것으로 초동수사 단계에서 경찰이 잘 못 파악해 '개구리 소년'이라고 불리게 됐다.

禹哲元(당시 13세.성서국교 6년), 趙浩衍( " 12세.5년), 金榮奎( "11세.4년),朴燦印( " 10세.3년), 金鍾植군( " 9세.3년) 등 실종 소년 5명은 그대로 진학했다면 현재 중고교생이 되어 있을 것이다.

그동안 소년들을 찾기 위해 생업을 포기하고 전국 방방곡곡을 헤매던 부모들은 세월의 덕분인지 이제 눈물도 메마르고 다시 직업을 얻어 본래의 생활로 돌아갔다.

그러나 가슴 깊이 맺힌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고 있다.

외아들 종식군을 잃은 金哲圭씨(42)는 "잠을 자다 한밤중에 깨어나서 종식이 얼굴이 떠오르면 미칠 것만 같습니다.어떤 때는 어둠을 헤치고 정신없이 산에 올라 한바탕 울어 보고 그리고 나면 가슴이 조금 후련해 지기도 합니다"라며 한숨을 토했 다.

이 사건에 대한 수사는 처음부터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지적이 많다.

경찰은 납치 등 범죄 가능성이 높은데도 초기 단계에서 가출쪽에 수사의 초점을 맞춤으로써 사건 해결의 단서를 찾을 기회를 놓쳐 버렸다.

소년들의 집단 가출사고로 방향을 잡으면서 수사 영역은 와룡산 일원에서 대구 전역, 영남,전국으로 확대됐으며 그에 따라 전국에서 비슷한 소년들을 보았다는 제보가 쇄도했으나 수사는 오히려 혼란에 빠져 버렸다.

경찰은 이렇게 쏟아지는 신빙성 없는 제보 때문에 소년들이 마지막 목격된 장소에 대해서도 의견이 일치되지 않은채 수사에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와 함께 수사의 질도 떨어져 정작 의혹이 있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합리적으로깊이 있게 파들어 가지 못하고 말았다.

물론 이 사건에 동원된 수사 인력이 연인원 30만명에 이르고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에 대해 철저하게 조사했다고 경찰은 말하지만 수사의 성패는 결국 극히 작은 실마리라도 얼마나 끈질기게,치밀하게 추적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점에서 수사다운 수사는 사실상 없었다고 할 수 있다.

이 사건 수사에 참여했던 한 경찰 간부는 "겁많은 열살 내외의 어린이 다섯명이 한꺼번에 집을 나가 전국민의 관심이 집중됐는데도 돌아 오지 않는 점으로 미루어 단순 가출로 보는 것은 무리였다"며 "처음부터 범죄 가능성에 중점을 두고 정예 요원으로 차분히 수사를 벌였어야 했다"고 반성했다.

또한 언론의 정도를 넘어선 경쟁보도와 높은 사람들의 지나친 관심은 수사를 내용보다 형식에 치우치게 만드는 부작용을 낳아 사건 해결을 더욱 어렵게 했다는 지적도 있 다.

국내 언론은 물론 일본(日本), 미국(美國) 등의 외신사까지 나서 흥미 위주의 기사와 오보로 수사의 근간을 흔들었으며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 경찰 고위 간부들은 여론을 의식해 사건에 지나친 관심을 표명하거나 무리한 지시를 내려 체계적인 수사를 방해했 다는 것이다.

어쩌면 이같은 언론과 고위층의 지나친 관심이 소년들을 돌아오지 못하게 했을 수도 있었다는 반성의 소리도 나왔다.

누군가가 특별한 범죄 의도없이 이 어린이들을 데리고 있다가 뜻밖에 사회적인 파문이 커지자 겁을 먹고 희생시켰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소년들은 과연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과연 살아 있는 것일까?

그동안 수사가 벽에 부딪히자 사건 해결을 위한 묘안과 기발한 방법이 백출했으며 소년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추리도 만발했다.

전국의 유명 점장이.무당.자칭 초능력가들이 사건 해결을 자신하고 도전했다가 실패했으며 ▲외계인(또는 UFO) 납치설 ▲북한 공작원 유괴설 ▲불치병 치료용 희생설 등 온갖 추측이 무성했다.

하지만 황당한 것들을 제외하고 합리적으로 추리해 본다면 ▲가출 ▲탈진 아사 또는 익사 등의 사고 ▲납치와 같은 범죄 등 3가지 상황이 일어날수 있었을 것이며 경찰도 이 세 방향으로 수사를 해왔다.

4년이 지난 지금까지 수사 결과로 볼때 가출이나 사고 가능성은 사라졌다고 할 수 있으며 결국 범죄에 희생됐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추정된다.

어린이들이 없어진 26일 오후 2시께 와룡산 불미골 입구에서 마지막 목격된 것이 사실이라면 결국 소년들은 그날 오후 2시에서 부모들이 찾아 나선 오후 6시 사이 와룡산 속이나 불미골 입구 선원지 부근에서 누군가를 만났을 것으로 봐야 한다.

이때 범행 대상이 됐다면 범인은 와룡산에서 소년들을 살해, 암매장했을 수도 있고 와룡산 밖으로 데리고 나와 범행을 저지를 수도 있다.

하지만 해발 3백m가량의 야산으로 당시 나무도 우거지지 않은 와룡산에서 범인이 동작이 재빠른 5명의 소년을 모두 붙잡아 목격자의 눈에 띄지도 않고 흔적도 없이 범행했을 가능성은 적다.

따라서 범인은 소년들을 유인, 봉고차 등에 태워 와룡산 밖으로 빠져 나가 범행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반항하는 소년들을 본 목격자가 없는 점으로 미뤄 면식범일 가능성이 크다고도 할 수 있다.

현재도 대구(大邱)경찰청은 具鍾泰차장을 본부장으로 상주 전담 요원 7명, 지원 요원 63명으로 수사본부를 두고 개구리 소년 찾기를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이제 이 사건은 국민의 관심에서 멀어져 제보도 거의 없고 수사진은 거 의 맥이 빠져있는 상태다.

이제라도 새로운 정예 수사관들로 팀을 새로 구성, 처음부터 다시 수사에 착수해 그동안의 미진했던 부분들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다섯 명의 어린이들이 한꺼번에 증발한 희대의 미스터리를 누가 풀 것인가? 경찰은 다시 한번 힘을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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