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일어선 일본(日本)-그 힘은 어디서 (28)

1991. 10. 5.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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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K방송(放送)> 1억2천만 국민의 가정(家庭)교사

=보도채널까지 문화.전통 교육=

권위 있는 뉴스, 교과서적 드라마 인기(人氣)

(서울=연합(聯合)) 特別取材班 = 보도와 오락이 TV방송의 주요 기능이라면 일본(日本)의 NHK는 국민을 일깨우는 교육기능을 거기에 덧붙여 충실히 이행해왔다. 전파매체의 엄청난 위력을 바탕으로 '안방의 가정교사'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어 공부를 핑계로 집에 위성안테나를 설치한 서울의 安모씨(35)는 NHK라는 가정교사의 집요한 가르침(?)에 대해 씁쓸한 경험을 지니고 있다. 어느날 다섯살난 아들이 한쪽 다리를 치켜들며 일본의 전통적인 씨름인 스모선수의 흉내를 냈기 때문이다. 무명선수들이 출전하는 아침부터 유명선수들이 등장하는 저녁 5-6시까지 하루 종일 전경기를 중계하니 철없는 아이가 그것을 '보고 배운'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신도(神道)에 뿌리를 두고 있는 스모는 1년에 최소한 3개월간은 매일 NHK-TV를 통해 독점중계된다. 원래는 일본국내에만 중계되던 것이 이제는 위성통신을 통해 이웃나라의 안방에까지 無비자로 입국 침투했다.

국제화를 표방하고 있는 위성방송은 상대적으로 정도가 덜하지만 일본국내 NHK-TV의 프로그램중 상당부분은 방송을 통한 국민교육에 큰 비중을 둔 당의정(糖衣錠)이라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일본(日本)에 부임하는 상사원 등 많은 외국인은 NHK교육방송(채널3)만 보고 있으면 일본역사는 물론 풍물,사회 등을 나름대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문화의 교과서"라고 부르고 있다. 비단 교육채널뿐이 아니다. 일반보도채널도 일본문화.전통과 일본정신을 강조하는 프로를 많이 내보내고 있다.

NHK가 일반교양 프로그램에서 전통적인 것을 꾸준히 방영하는 성향이 뚜렷하다면 보도에서는 신중하고 권위있는 보도로 영국(英國)의 BBC와 함께 이미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 있다.

타스통신이 보수세력에 의한 쿠데타 기도를 처음으로 보도한 지난 8월19일 바로 그시간 일본(日本)에서는 고시엔(甲子園) 고교야구대회 준결승이 한창이었다.

'고르바초프의 실각'을 처음으로 전한 것은 낮 12시38분쯤 채널 12의 '니혼TV'였고 보도를 축으로 한다는 NHK가 야구 중계방송을 중단하고 1보를 보도한 것은 7분이나 늦은 12시45분쯤이었다.

더구나 NHK는 '아직 확인 되지 않는 상황'을 전제로 타스보도를 전하면서도 고르바초프의 이름조차도 거명하지 않고 야나예프 부통령이 대통령권한을 대행한다고만 보도했다.

이같은 보도태도에 대해 비판의 소리도 없지 않았으나 결국 평소처럼 최대한 사실확인에 충실한 것을 평가하는 선에서 시비는 일단락됐다.

NHK가 권위 있는 보도를 위해 얼마나 애쓰고 있는가는 인사 정책에서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아침 7시부터 1시간15분동안 방송되는 '모닝와이드'를 맡아온 마쓰히라(松平)아나운서는 저녁뉴스 앵커와 함께 간판앵커임에도 불구하고 지난 5월 택시기사와의 시비가 알려지면서 앵커자리에서 하차했다.

또 하시모토 류타로(橋本 龍太郞)대장상의 동생 다이지로(大二郞)씨도 NHK에서 인기있는 캐스터로 각광을 받았으나 형의 선거운동을 도왔다하여 인사처분을받았다. 정식휴가를 얻어 장관업무에 바쁜 형 대신 지역구에 들러 유권자들과 악수를 나눈것이 무슨 문제가 되느냐는 반론도 없지 않았으나 NHK의 입장은 단호했다.

단순한 방송기관이 아니라 국민이 내는 수신료로 운영되기 때문에 -5천4백27억엔에 이르는 91년도 예산중에서 수신료는 92%에 이른다- 신뢰를 우선적으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쇼다 고이치로(정전(正田) 紘一郞)공보실 부부장의 설명이다.

뾰족한 재미는 없으면서도 가장 시청률이 높은 것은 상당수의 시청자가 뉴스는 도리없이 NHK를 보아야 한다는 의무감 비슷한 것이 있다고 쇼다 부부장은 은근히 자랑했다.

12개의 채널이 경쟁적으로 흥미거리를 만들어 내는 TV계에서 NHK뉴스는 시청률 20%에 육박하는 인기프로그램이다. 채널 12의 니혼TV는 아예 NHK의 뉴스시간을 피해 뉴스시간을 편성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산케이 신문에 근무하다 은퇴한 하나시마(花島)씨는 "대부분 오피니언리더들이 NHK뉴스를 보기 때문에 업무상 보지 않을 수도 없다"며 "특별히 기획프로는 놓치지 않으려고 애쓴다"고 말했다.

하나시마씨는 또 일요일 아침마다 방송되는 좌담회를 시청하면 웬만한 세미나에 참석하는 것과 맞먹기 때문에 특별히 녹화를 해두고 2-3번 반복해보며 특히 '인체의 비밀', '실크로드(비단길)' 같은 특집물 테이프는 아끼는 책과 같다고말했다.

또 NHK가 만드는 드라마는 단순한 오락물이 아니라는 이야기도 있다. 벌써 20년 가까이 일요일 저녁마다 방영되는 역사극은 많은 시청자들이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 뽑히고 있다.

시청률 20%에 육박하는 이 프로그램을 보는 시청자들 대부분은 신문, TV가이드 혹은 잡지에 소개되는 줄거리를 미리 읽고 TV 앞에 앉는다는 것이 NHK가 발행하는 안내서 '스텔라'를 만드는 한 편집자의 이야기이다.

일요일 저녁시간 휴식을 끝내고 다음주의 일을 준비하는 바로 그 시간에 오타 노부나가(織田信長),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아시카가 다카우지(足利尊氏)등 역사의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무게있는 사극(史劇)은 국민전체를 상대로 하는 역사공부 시간이 되는 것이다.

사극이 역사의 흐름을 조명하는 수업시간이라면 매일 아침 남편이 출근한 후 주로 주부들을 상대로 하는 15분짜리 드라마는 스토리의 잔잔한 재미를 가미한 주부들의 윤리시간이다.

전후(戰後)의 어려운 시절을 이기고 경제발전을 이루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까지 평가받고 있는 억척스런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린 '오싱'도 아침시간에 방송돼 주부들의 심금을 울렸다. '오싱'은 세계 26개국에서 방영돼 일본문화를 소개하는데도 일조를 하기도 했다.

올들어 매일아침 방송되고 있는 드라마 '당신의 이름은'도 과거 라디오방송시간이 되면 목욕탕이 텅텅 비었다는 일화가 따라 다니는 드라마의 재판으로 지고지순(至高至純)한 사랑을 그린 주부상대의 윤리 교과서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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