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살이 인생들의 일자리도 귀해

1990. 4. 6.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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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고달프고불안한서민(庶民)생활(12) 인간시장(市場)= 경기침체로 인간시장에한파

"끼니거르는 때있다"하소연

(서울=연합(聯合)) 陳炳太기자= 따뜻한 봄날씨에도 서울시내 곳곳의 노동시장에 불어닥친 취업한파는 좀처럼 가시질 않는다.

전반적인 경기침체로 지난해부터 노동인력수요가 크게 줄어들면서 노동시장에 나선 하루살이 인생들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졌기 때문이다.

서울관악구신림7동 샛별약국 앞길은 어김없이 이른 새벽부터 하루일자리를 구하 기 위해 도시락과 간단한 공구를 챙겨들고 모여드는 사람들로 붐빈다.

매일 새벽 6시께가 되면 1백50여명의 일용 근로자가 주로 건축현장 잡역부등의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이곳을 찾아 오는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낯익은 얼굴들로 이때부터 자기들을 찾아줄 사람을 기다리게 된 다.

그러나 주인을 만나 자리를 뜨는 운좋은 사람은 몇명에 지나지않고 대부분의 구직자들은 상오 7시를 넘어서면서 하루를 살아갈수 있는 또다른 장소를 찾아 나서야만 한다는 것.

수출부진으로 공장이 문을 닫은후 지난 1월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샛별약국 앞을 찾고 있는 李成吉씨(42.관악구봉천동)는 "요즘엔 1주일에 하루 일자리를 구하기도 힘들다"며 "가족들 볼 면목이 없어 매일새벽 이곳을 찾고 있으나 좀처럼 밥거리를마련치 못해 답답하기만 하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지난해 5월 경북 예천(醴泉)에서 농사를 짓다 무작정 상경한 劉相浩씨(34)는 "딸린 가족이 갓 태어난 딸과 함께 모두 다섯이나 돼 아내가 봉제일로 가계를 도와 간신히 입에 풀칠하고있다"며 "날씨가 풀리면서 일자리가 늘기를 기대하지만 하루 10명 남짓만 일당 1만5천원-2만원을 받고 일자리를 찾아 팔려갈뿐 많은 사람들은 헛탕을 치고 있다"고 말했다.

종로구낙원동 낙원상가 2층에 자리한 악사소개시장은 하오4시께가 되면 발디딜 틈이 없이 일자리를 구하려는 사람들로 만원을 이룬다.

특히 올해부터 심야유흥업소의 야간영업이 금지되면서 일자리가 작년보다 반정도나 줄어들어 악사를 찾는 업주가 나타나면 자존심을 버린채 자신을 선택해주기를 갈망한다.

많을 때는 8백-1천명 가량이 일자리를 찾고 있는 낙원상가 악사소개시장은 대부분 20대 후반에서 30대들로 전세방이나 월세방을 떠돌며 `연예인'이 될 무지개 꿈을 그리는 사람들이다.

낙원상가 악기상을 돌며 5년째 주문받은 악기등을 전국으로 수송하는 용달업을 하고 있는 辛昌柱씨(34)는 "매일 7백-8백여명의 자칭 연예인들이 악기상이 밀집한 상가 2층을 빽빽이 메우지만 이들중 일거리를 찾을수 있는 사람은 10%도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중학교시절부터 기타를 좋아해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뜻이 맞는 선후배와 함께 이길로 들어섰다는 金康一씨(32.동대문구휘경동)는 "일정하게 출퇴근 할수 있는 자리가 없어 자연히 무절제한 생활을 하게 된다"며 "특히 유흥업소 야간영업이 금지된 이후에는 벌이도 반으로 줄어들어 지금은 계획적인 생활을 하려해도 할 수가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朴文洙씨(29)도 "최근 업소경기가 나빠진 이후에는 일거리가 걸리지 않는 날들이 많아 끼니를 거르는 날도 생겼다"며 쓴 웃음을 지었다.

이곳의 악사들은 업소에 팔려나가 받는 일급등을 모두 주인에 주고 이가운데 8천원에서 5만원을 받는가 하면 업소에 5백-1천만원의 보증금을 준뒤 악기반주를 하고 손님들로부터 받는 팁만을 챙기는등 급료방식이 일정치 않다.

이밖에 동대문구성수2가2동 대방문방구앞,강동구천호1동 암사시장앞,왕십리 5동 동아의원앞,중랑구면목1동 조병흥산부인과앞등의 건설인부시장,종로구종로3가 피카디리극장앞,중구남대문로3가 북창동입구등의 주방장및 요리사시장,은평구수색동 수색슈퍼앞의 일용잡부시장등 대부분의 자생노동시장들도 그날 그날의 일자리를 구하려는 사람들로 붐비나 일거리를 구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사람이 많은 것은 다른 곳과 마찬가지다.

수도권지역에서 가장 큰 규모의 인력시장인 경기도성남시복정동복정네거리 자생노동시장도 부족한 일자리로 아우성이다.

다만 동대문구을지로6가 국립의료원뒤 골목길과 종로5가 보령약국뒤편의 봉제공노동시장만은 다른 노동시장과 형편이 좀 다르다.

봉제공 노동시장에서는 숙련공을 찾는 사람은 많으나 숙련공은 3-4년전부터 구하기 어렵게 됐다는 것이다.

고등학교 졸업만 해도 봉제기술을 배우려 하지않아 이같은 현상이 빚어지게 됐다고 한 봉제공업주는 말했다.

최근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서울시내 날품팔이 근로자들이 일자리를 찾기위해 모이는 자생노동시장은 모두 24곳에 달하며 전국적으로는 1백개가량이 될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들의 취업희망직종은 건설인부에서 일용잡부,배달원,요리사,봉제공,악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나 단순노무직이 80% 이상이다.

6.25전쟁 직후부터 형성된 것으로 알려진 종로3가 피카디리극장앞(요리사),남대문로 남대문시장과 북창동입구(조리사,배달원)를 비롯,농촌의 극심한 일손부족 현상을 반영해 86년도에 생긴 수색동 수색수퍼앞 농촌인력시장등 일용노동시장은 시장마다 특성이 있고 장이 서는 시간도 다르다.

건설인부및 잡부시장은 새벽 5시에서 7시까지 장이서고 주방장과 요리사 소개시장은 상오6시부터 9시께까지,봉제공노동시장은 하오1시부터 3시께가 절정이다.

서울시는 앞으로 이들 노동시장의 실정에 따라 대기장소,의자,공중전화,화장실,조명시설등의 편의시설을 제공할 계획이다.

이들 `인간시장'에는 그러나 앉는자리보다도 일자리가 시급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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